오늘도 차가운 강물로 한 외로움이 몸을 던진다 죽음과 마주친 순간 깨달음… “아~ 살고 싶다”
서울 영등포수난구조대 김범인 부대장(왼쪽)이 1월 29일 대원들과 함께 마포대교에서 투신한 남성을 구조한 뒤 다리 쪽을 바라보고 있다. 김 부대장은 “우리가 절망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놓으면 그들은 목숨을 놓아버린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강 투신은 고통이 덜한 자살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목숨에 미련이 없어도 고통은 두려운 사람들이 이런 착각에 빠져 한강다리에 선다. 하지만 강은 품 안으로 뛰어드는 이들에게 더없이 가혹하다. 한껏 가속이 붙은 사람 몸이 물과 부딪힐 때 충격은 맨땅에 그대로 떨어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에서 높이가 37m인 청담대교는 아파트 10층과 맞먹는다. 한강 다리 중 15m로 가장 낮은 마포대교에서 몸을 던져도 아파트 4, 5층에서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충격을 준다.
투신한 사람을 건져보면 등, 배 부위 속옷이 너덜너덜해져 있다. 팔다리가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된다. 떨어지는 동안 공포에 떨다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는 경우도 있다. 강은 의식 없는 생명을 집어삼키고 태연히 입을 닫는다. 다리 난간에서 발을 떼는 순간 후회해도 그땐 돌이킬 수 없는, 투신하면 절반이 사망하는 죽음의 낙하다. 그 치명적 선택에 내몰린 사람이 3일에도 있었다.
○ 생명줄 다시 잡은 비만 여성
‘원효대교 남단 상류방향 투신자 발생. 수난구조대 출동하세요!’ 3일 오후 4시경 서울 여의도 영등포소방서 수난구조대에 사이렌이 울렸다. 대원 6명이 서로에게 ‘원효 남단’을 외치며 40여 초 만에 고속정에 올라탔다. 대원들은 시속 70km로 달리는 배 안에서 맨몸에 검은 잠수복을 입었다.
“사람이 아직 떠있다고 하니까 장비 다시 확인해.” 김범인 부대장(51)이 무전으로 교신하며 대원들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무전기를 쥔 그의 손은 몸집에 비해 두드러지게 크고 두툼했다. 눈매는 날카롭고 얼굴까지 까맣게 타 이름처럼 ‘범인’ 같은 인상이었다.
출동 4분 만에 도착해보니 ‘살려 달라’며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있었다. 방수 오리털 점퍼 덕분에 가라앉지 않았다. 대원 2명이 그의 뒤로 헤엄쳐가 몸에 구명튜브를 씌운 뒤 배 앞으로 끌고 왔다. 김 부대장은 그의 겨드랑이에 두 팔을 넣어 배 위로 끌어올리려 했다. 뜻대로 잘 올려지지 않는지 서너 번 안간힘을 써 가까스로 배 위로 올렸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김 부대장이 헉헉거리며 말했다. 구조된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처방은 농담이다. 절망감을 잠시 잊게 해줘야 적어도 당장은 자살을 다시 시도하지 않는다는 게 그가 16년간 이 일을 하며 갖게 된 노하우다.
하지만 농담은 비수로 전해진 듯했다. “뭐라고요? 제가 무겁다고요?” 배 위에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점퍼를 벗은 여성은 씨름선수를 연상시키는 거구였다. “에이 그게 아니고 원래 물에서 건질 때는 다들 무거워요.” 김 부대장은 불쑥 높임말을 쓰며 말끝을 흐렸다. “안 그래도 뚱뚱한 것 때문에 죽으려고 했는데….” 생사의 경계를 오간 그 경황없는 와중에도 자신을 뚱뚱하게 보는 시선에 상처받은 것이다.
김 부대장은 대원들을 호령하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이 사정하듯 말했다. “피부가 참 고운 걸 보니 공주처럼 귀하게 자랐나 봐요.” 그러곤 담요를 온몸에 덮어주고 어깨를 토닥였다. 배가 둔치에 닿을 때까지 그녀는 말없이 강물을 내려다봤다. 구급차에 옮겨 타기 직전 그녀가 돌아보며 말했다. “저 같은 건 아무도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고생하셨어요.”
○ 생사 갈림길서 마지막 손 내미는 ‘전화’
남성은 전화 속 상담원이 ‘여보세요’를 여러 번 하고 나서야 말을 뗐다.
“거기 뭐하는 뎁니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 얘기 좀 합시다. 어디 가서 말할 사람도 없고…. 통화 녹음되면 이걸 유서로 해주세요.”
그는 일용직 노동을 하며 가족 없이 혼자 산다고 했다. 사업 실패 후 빚더미에 앉으면서 부인이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갔다. 빚도 감당이 안 되고 죽어야 끝이 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이들한테 사랑한다고 꼭 좀 전해주세요”라며 전화를 끊으려 했다.
“그 아이들이 아빠를 영영 못 보게 돼도 괜찮으시겠어요?” 상담원이 그를 붙잡았다. “선생님은 지금 죽을 운명이 아닙니다. 죽을 운명이라면 저랑 얘기하고 있지 않을 거예요.”
김 부대장의 시선은 전화기를 붙든 남성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남성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한참 한강을 내려다봤다. 그러고는 여의도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김 부대장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갔다.
○ 투신 후 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간 구조대원들은 이런 광경을 종종 본다. 물에 뜬 핸드백을 아등바등 부여잡고 있는 젊은 여성, 낙하 도중 살겠다는 마음이 들지 모른다며 물에 뜰 계산으로 우산을 챙겨 뛰어내린 대학생…. 건져놓고 나면 왜 빨리 오지 않았느냐고 역정을 내는 사람도 많다.
김 부대장이 시신을 수색할 때 교각 주변부터 살피는 이유가 거기 있었다. 한강에 뛰어내린 뒤 살겠다고 교각 쪽으로 헤엄치다 거의 다 와서 가라앉는 일이 부지기수다. 걸어서 강으로 들어간 사람도 뒤늦게 둔치 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세상과 작별한다.
지난해 11월 한 30대 여성이 수난구조대를 찾았다. 친구가 얼마 전 한강에 뛰어내렸다 구조됐는데 편지를 대신 전해주려고 왔다고 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김 부대장은 그가 한 달 전 구조한 이모 씨(36) 본인임을 알아챘다. 검은 정장에 하이힐을 신은 채 구조된 이 씨는 당시 말없이 울기만 했다.
편지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삶을 포기하려는 이들에게 ‘당신은 소중하다’고 말해주시면 두 번째 삶을 더 힘차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구조대원들이 목숨 던지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건 투신하는 이들도 ‘두 번째 삶’을 꿈꾼다는 믿음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수난구조대 김범인 부대장(왼쪽)이 1월 29일 대원들과 함께 마포대교에서 투신한 남성을 구조한 뒤 다리 쪽을 바라보고 있다. 김 부대장은 “우리가 절망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놓으면 그들은 목숨을 놓아버린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하지만 한강은 구조대원도 집어삼킨다. 2010년 12월 3일 그 사건을 얘기할 때 김 부대장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거기 도착하는 데 14분 23초가 걸렸어요.” 그날 한강에 빠진 사람은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구조대원들이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4분의 골든타임이 훌쩍 지나고서야 김 부대장은 그들을 건져냈다.
영등포수난구조대가 서울 서쪽을 맡는다면 동쪽을 담당하는 광진수난구조대의 동료들이 출동하는 중 배가 뒤집혔다. 근무조 거의 전원이 물에 빠져 이들을 구조할 곳은 영등포구조대뿐이었다. 김 부대장은 전속력으로 사고가 난 잠실대교로 향했다. “14분 동안 14년이 늙어버린 것 같았죠.” 너울에 배가 뒤집히면서 4명은 탈출하고 장복수 소방장(42)과 권용각 소방교(39) 등 2명은 뒤집힌 보트 안에 갇혀 있다 강바닥에 가라앉은 상황이었다. 한강에 사람이 떠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던 길이 저승길이 됐다.
위에서 본 한강은 푸르지만 그 속은 암흑의 세계다. 물속의 구조대원이 앞을 볼 수 있는 거리는 길어봐야 30cm다. 한 손으로 줄을 잡고 다른 손을 휘저으며 오직 촉감에 의지해 수색한다. 수심은 5∼15m 내려간다. 2명이 짝을 이뤄 잠수하고 남은 대원들은 위에서 동태를 살핀다. 공기통으로 호흡하며 내뱉은 물방울이 물속의 안부를 전하는 신호다. 규칙적으로 일정한 크기의 공기방울이 올라와야 하는데 가끔 호박처럼 큰 물방울이 툭툭 튀어 오른다. 갑자기 장애물을 만났거나 시신을 들어올리느라 호흡이 가쁘다는 신호다. 낚시꾼이 버린 그물에 몸이 걸려 물속에서 오도 가도 못한 적도 많다.
○ 절망에서 건져주지는 못하는 구조대
이런 위험보다 구조대원을 힘들게 하는 게 있다. 김 부대장은 한강에서 한 여인을 두 번 건진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린 여인을 찾다가 포기하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바위틈에 누군가 물 위로 얼굴을 내놓고 있었다. 김 부대장 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20대 여성이었다.
김 부대장은 그 여성을 구조대 사무실로 데려와 찻잔을 건넸다. “어쩌다 그리 모진 마음을 먹었어요?” 목사인 아버지가 원치 않는 포교활동을 강요한다고 했다. 아무리 사정해도 소용이 없다며 말없이 훌쩍였다. 김 부대장은 투신 연락을 받고 달려온 어머니에게 “딸이 오죽하면 그랬겠느냐. 남편에게 잘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어머니는 대답 없이 딸을 데리고 나갔다.
한 달여 뒤, 김 부대장은 양화대교 아래 사람이 떠있다는 신고를 받았다. 평소엔 구조작업 지휘만 하는데 이날은 대원들의 몸이 좋지 않아 직접 물에 들어갔다. 그는 건져 올린 사람의 얼굴을 보고 배 위에 주저앉았다. 엄마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갔던 그 여성이었다. 숨은 오래전에 멎은 듯했다. “물에서 건져줄 수는 있지만 절망에서 건져내지는 못하는 제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에필로그
‘지금 보고 싶은 사람 있어요?’ ‘그 사람 얼굴을 떠올려 보세요.’ ‘지금 가서 한 번 보고 오는 건 어때요.’ 마포대교에는 걸음이 닿는 곳곳에 절망한 사람들을 붙잡으려는 문구가 줄지어 적혀 있다. 마포대교에선 최근 10년간 약 200명이 한강에 몸을 던져 전국 교량 가운데 투신 사고가 가장 많다. 투신이 특히 많은 남단 200m 지점에는 자살을 만류하는 ‘한 번만 더’ 동상이 있다.
전망대가 함께 있는 그곳 난간에는 볼펜으로 눌러쓴 낙서들이 많다. ‘병철♡수연 우리 사랑 영원히.’ ‘나만한 인재 없다. 이번 면접 대박.’ ‘나는 할 수 있어 살아있으니까.’ 누군가는 세상과 단절하는 벼랑 끝에서 누군가는 희망을 다지고 있었다. ‘죽겠다’는 절규와 ‘잘 살자’는 격려가 팽팽히 교차한다.
지난해 그 자리에서 뛰어내렸다 구조된 한 50대 남성을 수소문해 “뛰어내린 곳이 왜 하필 거기였느냐”고 물었다. 그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다리를 건너는데 딱 그 지점에서 물이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물까지 거리가 유난히 가까워 보여 떨어져도 괜찮겠지 싶었다”고 했다.
퇴직금을 털어 넣은 치킨집이 망해 자살을 결심했던 그는 최근 택시운전사 일을 시작했다. 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붙었다고 자랑을 늘어놓더니 “등록금이 문제죠”라며 한숨을 쉬었다. 살아갈 걱정은 여전했지만 그 걱정이 살아갈 이유가 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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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