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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여기는 신문박물관]일제때 신문사서 한글교육책 만들어 보급

입력 | 2013-02-07 03:00:00


한글공부 1면(왼쪽). 1934년 6월 16일자 동아일보에 60만 부의 계몽운동 교재가 쌓여있는 사진이 실려 있다. 동아일보DB

일제강점기에 신문은 학술대회, 운동대회, 비행대회, 전시회 등 여러 문화사업을 벌여 문화적 구심점이 됐습니다. 이런 사업 가운데 문자보급운동이 있습니다. 교재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고, 학생을 주축으로 해서 전국에 ‘계몽대원’을 보내 한글을 가르쳤던 활동입니다.

신문박물관에는 문자보급 교재가 전시돼 있습니다. 홀소리와 닿소리, 음절연습을 실은 ‘한글공부’(동아일보사·1933년 7월), 기초 산수법을 실은 ‘일용계수법’(동아일보사·1933년 6월), 한글과 산수를 동시에 가르치려는 목적으로 발행한 ‘문자보급교재’(조선일보사·1934년 6월)가 대표적입니다. 손바닥만 한 크기, 20장 남짓의 작은 책자입니다. ‘일용계수법’의 머리말을 잠시 읽어볼까요?

‘여러분 다음에 보인 것이 무엇입니까? 21058305명. 이것은 우리 조선인구수(朝鮮人口數)랍니다. 이 중의 한 분으로서 이것을 보시고도 얼마나 되는 줄을 모르신다면 될수잇읍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만들어서 여러분께 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도 남과 같이 알아나갑시다.’

1930년대에는 조선 백성 중에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국민이 1700만 명 이상이었습니다. 어린이를 제외하면 80∼90%가 문맹이었던 셈이죠. 게다가 일본총독부는 일본어를 국어로 지정하고,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한글 사용을 금지하는 조선어 말살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우리말과 민족의식이 사라질 위기였습니다. 또 언론 탄압이 갈수록 심해져 학생과 지식인 사이에는 좌절감이 팽배했습니다.

이때 동아일보는 1928년 ‘글장님 없애기 운동’(문맹퇴치운동)을 시작했고 1931∼1934년에는 브나로드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칩니다. 브나로드 운동이란 러시아 지식인의 농민 계몽운동을 가리킵니다. ‘농민 속으로’라는 뜻입니다.

신문사에서 무료로 배포한 교재를 갖고 청년 학생들이 전국의 구석구석 찾아가서 문맹 타파 운동을 벌이던 장면은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이던 소설가 이광수의 ‘흙’과 심훈의 ‘상록수’ 같은 신문연재 소설에 생생히 나옵니다.

한글과 숫자를 가르치고 셈하는 법을 익히게 해서 마침내 답답한 ‘글장님’의 처지를 면하게 하던 모습은 암울했던 일제 치하에서 민족의 앞날에 희망을 줬습니다.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가장 빠른 길은 한글을 익히게 하고 민중을 계몽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독립운동의 일환이기도 하였습니다. ‘일용계수법’의 저자는 독립운동가 의병 백남규입니다.

문자보급 교재는 동아일보가 210만 부, 조선일보가 99만 부를 발행했습니다. 무료였습니다. 당시 이렇게 다량으로 인쇄 가능한 시설을 갖춘 곳은 신문사가 유일했습니다. 또 신문지국을 이용해 전국에 배포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 강점하의 동아일보는 매우 영세했습니다. 발행부수가 6만 부를 넘지 못할 정도로 독자층은 빈약했고, 일제의 수탈로 신문에 광고를 게재할 만한 기업 역시 드물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자보급 교재를 몇백만 부 발행해서 무료 배포한 일은 세계 언론사상 유례가 없습니다.

일제 총독부는 문자보급운동 초기부터 방해하다가 1935년에는 중지령을 내렸습니다. 교재의 배포마저 막았습니다. 일종의 금서로 취급받아 지금은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문화재청은 “언론사의 문자보급운동이 우리나라 독립에 크게 기여하고 민족정신을 함양했다”며 이들 교재는 국민 계몽에 기여한 구체적 증거물이므로 연구 관리 보존할 가치가 있다면서 문화재로 등록했습니다.

이현정 신문박물관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