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등 늘 푸른 나무로 울창한 제주시 조천읍 선흘곶자왈. 용암이 흐른 암괴에 숲이 만들어진 곶자왈의 가치가 알려지면서 곳곳에 무분별하게 생태탐방로가 만들어지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 탐방로 조성 우후죽순
곶자왈은 숲을 뜻하는 ‘곶’과 돌, 자갈을 의미하는 ‘자왈’이 합쳐진 제주 방언. 제주도 면적 1848.2km²의 6%인 110km²에 형성돼 있다. 조천∼함덕, 구좌∼성산, 한경∼안덕, 애월 등 크게 4개 지대로 나뉜다. 2000년대 들어 곶자왈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생태 탐방로가 곳곳에 개통됐다. 조천∼함덕 곶자왈에서는 교래자연휴양림이 대표적이다. 휴양림에 위치한 큰지그리오름(작은 화산체)를 오가는 곶자왈 생태 탐방로가 생겼다. 이 코스는 졸참나무, 단풍나무 등 낙엽활엽수가 군락을 이뤄 동백동산과는 다른 분위기다.
가장 많은 탐방로가 생긴 곳은 한경∼안덕 곶자왈 지대로 청수리, 화순리, 서광리에서는 주민들이 종전 마을공동목장 등을 활용해 탐방로를 만들었다. 올레 14-1코스, 11코스 등도 곶자왈을 관통한다. 제주지역 최초의 ‘곶자왈도립공원’도 이 지역에 지정돼 탐방로가 만들어졌다. 탐방로는 대부분 2km에서 6km에 이른다.
탐방로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곶자왈의 신비를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 환경적, 생태적 가치를 일깨워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훼손이 불가피하다. 탐방로 개설, 안내시설물 설치로 식생이 파괴되고 희귀식물을 몰래 뽑아 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노루, 오소리, 참개구리, 팔색조, 애기뿔소똥구리 등 야생동물의 서식을 방해하기도 한다.
곶자왈에 내린 비는 분당 1m의 속도로 지하에 스며들 만큼 물이 빨리 흡수되고 곳곳에 ‘숨골’이라고 불리는 용암 함몰구가 있어 지하수를 만드는 통로가 된다. 곶자왈은 땅속에서 15도 안팎의 일정한 공기가 올라오기 때문에 남방계 식물이 많지만 압록강 등지에서 자라는 골고사리, 큰지네고사리 등 북방계 식물도 공존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곶자왈에서 땔감, 산나물을 얻었고 소와 말을 방목했다. 그래서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 유적이 나오기도 한다. 자연생태와 인문, 지질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종합박물관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중요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골프장 조성, 관광지 개발, 희귀 수목 채취 등으로 곶자왈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제주도는 추가 훼손을 막기 위해 2009년부터 조천읍, 한경면 지역 곶자왈 사유지 매입에 나섰다. 지난해까지 216억 원을 들여 마라도 면적의 10배인 3km²를 사들였다. 올해 추가로 50억 원을 투자해 0.45km²를 매입한다. 2007년 설립된 곶자왈공유화재단도 사유지 매입을 위해 지금까지 26억 원을 모금했다. 곶자왈 가운데 국공유지를 제외한 66km²를 사들인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관리다.
제주도발전연구원 김태윤 선임연구위원은 “곶자왈 보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는데도 기준과 원칙 없이 탐방로를 개설하고 시설물을 설치하고 있다”라며 “학술조사를 거친 후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보전, 관리, 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