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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문명의 십자로 신장, 분쟁의 길목이 되다

입력 | 2013-02-09 03:00:00

◇신장의 역사
제임스 A 밀워드 지음·김찬영 이광태 옮김/624쪽·3만8000원·사계절출판사




2007년 8월의 일이다. 실크로드 탐사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라 비행기를 탔는데 승무원이 물었다. “이 주변에 무슨 유명한 관광지가 있나요. 여기 올 때마다 선생님처럼 배낭을 메신 여행객이 많아서요.” 나는 신장(新疆)이 실크로드 핵심지역이며 여기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실크로드 탐방객일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인사치레인지 알 수 없지만 승무원은 자신도 꼭 실크로드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하며 지나갔다.

나는 처음에 굉장히 이상했다. 손님들 모시고 신장을 오가는 승무원이 이곳 사정을 그렇게도 모르나. 항공사에서는 이런 교육도 안 하나. 그러나 자리에 앉아 생각해보니 그 승무원이 이해가 됐다. 배우지 않아서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모두 실크로드를 배운다. 단 학교에서 배우는 실크로드는 모두 옛 이야기다. 그곳이 현재 어디인지 지금 사정은 어떤지는 관심 밖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실크로드 관련 전문서적과 교양서도 다르지 않다. 서역, 장건, 석굴사원, 사람과 상품과 종교가 오갔던 길, 이 길이 한반도까지 이어진다는 것 등 천편일률적이다.

반면에 일부 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은 주로 신장의 환경문제와 민족분규를 이야기한다. 어떤 역사 과정을 거쳐 현재처럼 환경이 파괴되고 민족분규가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원적 설명은 하지 않고 현상만 이야기한다. 이런 접근은 신장의 현재 상황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방해함은 물론이고 종종 심각한 과장을 불러온다. 대표적 사례가 베이징 올림픽 전 발생한 폭탄테러와 2009년 7∼8월에 일어난 위구르족과 한족의 폭력충돌이다. 당시 인터넷과 신문 방송에는 사진자료와 함께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어디에도 사건 현장이 문명의 십자로인 실크로드의 현장이라는 설명은 없다. 이는 실크로드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현재 문제에 무지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실크로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현재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현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과거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장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책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실크로드와 현대 신장이 별개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이 문제를 해결할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미국 조지타운대 제임스 밀워드 교수다. 그는 청대 중앙아시아 변경 문제에 관한 현존 최고의 학자다. 저자는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1978년부터 이 책을 쓰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의 교과서가 될 만하다. 교통의 요충지, 문명의 십자로로서 신장의 지리적 위치와 자연환경, 그 안에서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저자는 치밀한 고증과 요령 있는 설명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간다.

이 책을 받고 누구보다도 반가워한 사람은 필자다. 사연이 있다. 원서가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즉시 주문하여 번역을 결심했지만 차일피일 마루다 번역본을 받아보게 됐다. 후회와 반가움이 겹쳤다. 좋은 책을 내손으로 번역해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그래도 누군가 해서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베이징 출장 중 꼬박 이틀을 투자하여 완독했다. 먼 옛날 이 땅에서 살다간 누란왕국의 미녀, 이 땅을 여행한 장건, 이 땅을 침략한 유목민, 이 땅을 거점으로 장사를 한 소그드인, 이 땅을 신장으로 만든 건륭황제 그리고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위구르인과 한족 중국인의 이야기 등 신장의 과거와 현재가 그림처럼 그려진다.

이평래 한국외국어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