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이창래 지음·나중길 옮김/664쪽·1만5800원·알에이치코리아
재미 소설가 이창래의 장편 ‘생존자’는 한 고아원을 중심으로 6·25전쟁의 아픔을 그려낸다. 전쟁고아가 된 주인공 ‘준’은 평생 고통과 상처 속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6·25 전쟁 당시 한 고아의 모습. 사진작가 임응식의 작품 ‘전쟁고아’
이 때문에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10월이 다가오면 각국 도박사이트들이 점친 수상 후보자군에 관심이 쏠린다. 2011년에는 눈길을 끄는 예측이 나왔다. 이 책의 저자인 재미 작가 이창래가 베팅사이트 나이스로즈에서 수상 가능성 3위(배당률 8 대 1)에 오른 것. 그해 다른 베팅사이트인 래드브록스가 고은 시인을 6위(배당률 14 대 1)에 올려놓은 것보다 높았다.
재미작가 이창래
작품은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흐른다. 전쟁고아인 ‘준’과 참전 미군병사인 ‘헥터’, 선교사의 아내인 ‘실비’. 이들은 6·25전쟁에서 지옥의 끝을 본다. 준은 아버지가 간첩 혐의로 사형됐고, 오빠는 전선에 끌려갔다. 피란길에 어머니와 동생들마저 잃은 준은 헥터를 만나 고아원으로 들어간다.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헥터는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자신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 생과 사의 전장에서 그는 짐승처럼 변해가는 동료와 자신을 보고 폭력사건에 휘말려 불명예 제대한 뒤 고아원에서 관리인으로 일한다. 만주사변의 혼란 속에서 성폭행을 당한 실비는 선교사의 아내가 돼 고아원에서 일하지만 과거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마약에 빠진다.
소설은 거대한 전쟁의 광풍 속에서 고통 받는 개인의 삶을 조명한다. 게다가 이들의 아픔은 휴전 이후에도 이어진다. 1980년대로 시점을 옮긴 작품은 살아남은 준과 헥터의 재회를 통해, 그들의 아들 니콜라스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통해 전쟁이 한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모습을 잔잔히 짚어낸다.
6·25전쟁을 다룬 소설이 많지만 국내 작가의 경우 한국인의 아픔에 주목한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전쟁고아, 미군병사, 선교사 아내의 시선을 통해 6·25전쟁을 좀더 보편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동시대 인류의 아픔으로 승화시킨다. 또한 지옥과도 같은 전쟁 속에 짓밟히는 인간성, 양심, 윤리들도 낱낱이 까발린다. 국가에는 전쟁의 승패가 존재하지만 한 개인에게 전쟁은 고통과 상처뿐이라는 문제의식을 묵직하게 전달한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