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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드림/서비스 가시 뽑아야 일자리 새살 돋는다] 의료관광객 100만명 시대 막는 의료법

입력 | 2013-02-12 03:00:00


서울 중구 명동의 미한의원에서 김종권 원장(왼쪽)이 환자를 대상으로 ‘한방 미용침’ 시술을 하고 있다. 소규모 한의원인 미한의원은 2011년에 2900여 명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했다. 김 원장은 “의사 개인의 능력으로 의료관광객을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정책자금 등 당국의 체계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 비만 전문 네트워크 병원인 365mc병원의 김남철 원장은 최근 중국 시장을 겨냥해 중국동포 한 명을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로 뽑으려 했다. 중국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통한 데다 의료 관련 지식도 수준급인 인재였다. 김 원장은 이 병원을 찾는 중국인 의료관광객과 중국어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돼, 고객이 크게 늘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당국으로부터 “취업비자 발급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김 원장은 중국에 유학한 경험이 있는 한국인을 의료관광 코디네이터로 채용했다. 》

그나마 의료관광 코디네이터의 경우는 외국인을 채용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운과 때’가 맞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외국인 의사와 간호사는 아예 채용이 불가능하다. 한국 의료법이 외국 의사면허 소지자의 국내 의료기관 취업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등 의료관광 선진국 병원의 대형 병원들이 여러 국적의 의사, 간호사, 코디네이터들을 수십 명씩 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국내 의료계는 피부 및 성형, 건강관리 등 관광객 유치 효과가 큰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기술수준을 자랑한다. 하지만 인력 채용부터 병원 홍보, 투자 등에 관련된 규제가 산적해 있고 정부 지원도 크게 부족하다. 그렇다 보니 한국을 찾는 의료관광객의 수는 태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실정. 해당 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2020년까지 의료관광객을 10배로 늘려 21만5000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해외 의료인력 채용 규제를 남겨 두고서는 어림없는 이야기”라고 입을 모은다.

○ 외국인 의사, 의료관광객 ‘마중물’로

의료관광 활성화를 위해 외국인 의료 인력의 국내 취업문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의료계는 “한국의 의료 현실도 모른 채 외국인이 수술과 진료 등에 참여하는 것은 환자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며 반대해 왔다. 보건복지부도 지난해 9월 공청회를 열어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모으는 등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이익집단의 반대 목소리에 막혀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현장의 요구는 훨씬 긴박하다. 의료관광의 활성화는 외국인 의료 인력의 도움 없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외국인 환자 비율이 높은 병원에 우선적으로 해당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용균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연구실장은 “2011년에 외국인 의료관광객 156만 명을 유치한 태국이나 의료관광 선진국인 싱가포르는 모두 의료관광객이 많은 국가의 의사 면허를 자국에서도 인정한다”며 “외국 인력 진입을 계속 막을 경우 외국인 환자 유치는 확대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의료관광 지원금인데…“병원은 제외”

서울 중구 명동의 미(美)한의원 김종권 원장은 지난해 11월 한국관광공사가 보낸 공문 한 장을 받았다. 제목은 ‘의료관광 유관기관 대상 융자사업 설명회’였다. 마침 병원 확장에 자금이 필요하던 김 원장은 잔뜩 기대하면서 꼼꼼히 내용을 들여다보다 금세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융자 지원 대상이 ‘의료관광 숙박시설을 짓는 호텔업’에 한정돼 있었던 것이다.

의료관광의 최일선에 있는 병·의원들이 정부 정책자금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점도 활성화를 막는 문제점 중 하나다. 미한의원은 2011년에 외국인 환자 2900명을 유치해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국내 외국인 환자 상위 10개 의료기관 중 5위에 올랐다. 1∼4위가 대부분 대형 종합병원들로 채워진 점을 감안하면 소규모 한의원으로는 매우 이례적인 실적. 그럼에도 ‘의료’를 맡은 복지부나 ‘관광’을 맡은 문화체육관광부 양측에서 병원 확장을 위한 정책자금을 지원받을 기회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김 원장은 “늘어나는 외국인 관광객 수요에 맞춰 의료기기 등 시설투자를 늘리려고 해도 그저 ‘개인사업자’로서 은행 대출에만 의존해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외부 투자를 받으려 하니 ‘영리병원 금지 규정’에 막혀 있다.

이 의원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방 성형침’ 등 의료상품을 개발해 의료관광객 유치에 성공했다. 김 원장은 “쉬는 날엔 공항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홍보 전단’을 돌려가며 환자를 늘렸지만 지금부터가 문제”라며 “정책적 지원 없이 해외의 한류 바람이나 의사 한 명의 개인기로 의료관광객 100만 명 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 정부 당국자조차 “불합리한 의료법”

의료관광 관련 규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특히 ‘광고 규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현행법상 병원이나 여행사가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해 국내에서 광고를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삼성서울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이 유치할 수 있는 외국인 수도 ‘전체 병상의 5%’로 묶여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 상위 10개 병원 중 7곳이 상급종합병원인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 ‘외국인 의료관광객 100만 명’ 시대가 와도 환자를 받을 공간이 없어 돌려보내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해외로 출국한 환자들의 수술 경과를 살펴볼 수 있는 ‘원격 진료’ 역시 국내에선 불법이다. 한 번 한국에 올 때마다 수백만 원의 항공료를 내야 하는 외국인 환자들이 한국행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점이다. 의료관광을 담당하고 있는 한 정부부처 당국자는 “다른 나라가 모두 허용하는 병원 홍보조차 못 하게 막는 의료법을 갖고 어떻게 의료관광 활성화를 외칠 수 있겠느냐”고 털어놨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국제 의료관광 시장에서 국내 의료법을 통해 홍보를 제한하거나 외국인 환자를 위한 병상 수를 제한하는 것은 불필요한 규제”라며 “이미 ‘병상 수 5% 제한’을 넘어서는 병원도 적지 않은 상황인 만큼 관련 부처 합동으로 규제를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의료관광 비자’ 규제 많이 풀었지만… ▼

한국 병원들의 해외환자 유치 활동이 갖가지 규제에 막혀 있지만 의료관광객을 위한 ‘비자 문제’만큼은 그나마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등 관계부처들은 2009년 ‘의료관광 비자’ 신설을 시작으로 외국인 환자들의 입국 편의를 돕기 위해 다양한 정책과제를 발굴해 실행에 옮겼다. 최근 의료관광객이 매년 수만 명씩 늘어난 것도 이런 정책들이 효과를 낸 덕분으로 해석된다.

대표적 규제 완화는 외국인 환자들이 입국비자를 신청할 때 필요한 ‘재정상태 입증절차’가 대폭 간소화된 점. 정부는 2011년부터 국내 병원의 보증을 전제로 환자의 치료비 지불 능력을 증명하는 서류의 제출을 면제해 주고 있다. 또 지난해에는 중국인 의료관광객 유치를 위해 복수비자 유효기간을 의료 목적에 한해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했다.

의료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서울 강남구보건소의 신호진 팀장은 “그간 환자들이 입국할 때 걸림돌로 주로 거론됐던 비자 규제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보완할 점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의료관광 비자가 다른 비자보다 신속히 발급되긴 하지만 의료관광 경쟁국인 태국, 싱가포르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다. 이들 두 나라는 의료관광객에 한해 아예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이용균 한국병원경영연구원 연구실장은 “비자를 아예 요구하지 않는 의료관광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여전히 비자 장벽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내 의료관광객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비자 발급은 가장 민감한 문제다. 해외 의료관광에 나서는 중국인 대부분은 주위의 눈치를 예민하게 의식하는 상류층이어서 기록이 남는 비자 발급을 꺼려 한국 대신 태국, 싱가포르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 또 시간을 다투는 응급환자들에게도 비자는 한국행을 가로막는 주된 ‘서비스 가시’ 중 하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중국인의 비자가 면제되는 제주의 상황을 보면 비자 규제 완화가 의료관광 활성화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지난해 8월 제주에 국제진료센터를 낸 리더스 피부과 의원은 “이용객의 90% 이상이 중국인”이라고 말했다. 무비자 혜택과 높은 의료수준, 풍부한 관광자원의 3개 요소가 결합해 막대한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설명이다.

이런 점 때문에 중국인을 위해 무비자 방문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의 한 성형외과 의원 관계자는 “제주가 무비자 효과를 보고 있지만 외국인이 한국에서 의료서비스를 제일 받고 싶어 하는 곳은 서울 등 대도시”라며 “선별적으로 의료관광 무비자를 늘리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정용엽 경희대의료원 QI팀장은 “의료관광비자와 출입국 심사제도의 간소화는 외국인 환자, 그중에서도 중증환자에게 꼭 필요한 요소”라며 “비자 발급 절차를 최대한 줄이고 무비자 및 ‘급행비자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중현 경제부 차장  
▼팀원 유재동 문병기 박재명 김철중(경제부) 김희균 이샘물(교육복지부) 염희진(산업부) 김동욱 기자(스포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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