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베를린은 ‘꽝’이다. 제6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주무대인 포츠담 광장 주변에는 개막일인 7일부터 사흘 내내 눈이 내렸다. 모스크바 출신 기자도 놀랐다는 서울의 ‘영화 15도 추위’는 없지만 습한 공기가 뼛속을 파고든다. 볼 키스를 하는 여인들처럼 지중해의 햇살이 반겨주는 프랑스 칸 영화제와 딴판이다.
음식은 입맛을 살리기보다 허기를 채우는 용도라고 해야 할까. 영화 ‘베를린’에서 식당을 찾은 리학주(이경영)가 련정희(전지현)에게 했던 “접대하라우”란 대사가 들릴 것 같은 독일식 식당. 메뉴에는 입맛 당기는 게 없다. “맥주나 주세요.”
경쟁 부문에 오른 작품들도 칸보다 못하다. 지난해 칸은 미하엘 하네케(‘아무르’), 켄 로치(‘에인절스 셰어’), 크리스티안 문지우(‘비욘드 더 힐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라이크 섬원 인 러브’) 등 쟁쟁한 감독의 작품들로 장식됐다. 이에 비해 베를린은 홍상수 감독(‘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비롯해 1992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빌 어거스트(‘나이트 트레인 투 리스본’), 거스 밴 샌트(‘프라미스드 랜드’),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사이드 이펙츠’)이 눈에 띄는 정도다. 칸에 비하면 이름값이 한참 떨어진다.
영화에 대한 열정은 지중해 햇살보다 뜨겁다. 티켓부스에는 아침부터 사람들이 긴 줄을 선다. 상영관에는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반면 할리우드 스타가 레드카펫을 밟는 날에 호들갑을 떠는 사람은 별로 없다. 냉정과 열정이 묘하게 공존한다. 옛 베를린 장벽이 있던 곳이라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정서가 혼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사 마감을 반기듯 누군가가 호텔 방문을 두드린다. “민 기자, 슈바인스 학센(독일식 훈제 족발) 먹으러 가야지.”―베를린에서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