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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문의 소설 속 인생]민족의 대립을 격파한 흑기사

입력 | 2013-02-13 03:00:00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시내에서 월터 스콧 경의 기념각(閣)과 동상의 위치는 서울로 치면 세종대왕의 동상이 자리한 곳과 같다. 유럽의 800년 역사를 거침없이 넘나드는 스콧의 역사소설들은 물신주의와 기계 문명에 지친 19세기 산업사회에 중세에 대한 동경이 열병처럼 퍼지게 했다.

그러나 작가 스콧의 목표는 과거 특정 시기에 대한 찬미가 아니고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에 대한 고찰이었다. 스콧은 또한 역사의 선례를 통해서 동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시사했다.

스콧의 일곱 번째 소설 ‘아이반호’(1819년 출간)는 영국에서 토착 세력인 색슨족과 정복자 노르만족의 화해라는 중요한 역사적 전기(轉機)를 다루고 있다. 바이킹의 일파인 색슨족은 6세기부터 영국을 침공해서 원주민을 정복하고 영국의 지배자가 되었으나 1066년 프랑스 북부에서 침입한 노르만족에게 패해서 압제와 멸시를 당하는 피지배계급으로 전락했다. 소박하지만 강인하고 자존심 강한 색슨족과 세련되고 술수에 능한 노르만족은 영원히 반목하고 영국의 평화와 안정은 불가능해 보였다.

스콧은 ‘아이반호’에서 사자왕 리처드라는 훌륭한 왕의 출현으로 두 민족의 화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제시한다. 사실 두 민족의 화해는 한 번의 계기에 획기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수 세기에 걸쳐, 법정과 학교, 공문서에서 단계적으로 영어(앵글로색슨 어)를 사용하게 하는 등의 여러 조처와 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따라서 사자왕이 한꺼번에 이룩한 것은 아니지만 스콧은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 용맹과 관대함의 일화가 회자되던 전설적인 영웅 리처드 1세에게 그 촉매의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나 말미에 리처드의 즉흥적이고 엄정하지 못한 성격 때문에 문제가 남아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스콧에게 중요했던 것은 색슨족과 노르만족의 화해가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가 하는 것보다 영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필수적이던 두 민족의 화해를 통해 그가 그토록 염원하던 스코틀랜드인과 영국인의 융합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스코틀랜드인에 대한 동등한 권리와 예우를 전제로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 아이작과 레베카를 등장시킨 것은 당시(19세기 초)에 중요 이슈이던, 영국 내 유대인의 시민권을 인정하는 문제에 힘을 보태기 위한 것이었다.

스콧은 분열되고 불평등한 사회를 언제나 안타까워했다. 그의 첫 소설 ‘웨이벌리’(1813년 출간)는 1688년의 명예혁명으로 축출되었던 스튜어트 왕실의 계승권자가 야기하는 체제 위협이 마침내 척결되는 과정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1745년에 스코틀랜드에 상륙한 ‘멋쟁이 왕자 찰스’의 왕위 찬탈 시도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나 원래 스코틀랜드 출신인 스튜어트 왕가의 복원은 차별받던 스코틀랜드인들의 염원이었다. 스콧은 혁명을 원하지 않았으나 스코틀랜드인의 옛 왕조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오랜 통한을 전국의 독자에게 이해시켰다.

스콧의 역사적 지식은 연대기적 ‘사건’뿐 아니라 각 시대의 관습, 관념, 도로, 건축 양식, 복식, 병기, 무술 경기 방식 등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그의 주인공들은 무결점의 모범 청년, 숙녀여서 현대인의 취향에 크게 어필하지 못하는 반면에 서민층의 인물과 부차적인 인물들은 개성이 뚜렷하고 생동한다.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을 주는 악당 부아길베르, 돈을 생명보다 아끼지만 인정과 의리를 외면 못 하는 수전노 아이작, 당차면서도 애처로운 레베카, 아들의 이익보다 민족의 독립을 우선시하는 완강한 색슨족 지도자 시드릭, 지혜주머니 어릿광대 왐바 등 흥미로운 인물이 풍성하다.

춥고 배고프고 기진맥진한 리처드가 한밤중 숲 속에서 단식 수행을 한다는 수도사를 만나 포식하는 코믹한 장면이나 레베카가 부아길베르의 마수를 피해 성의 높은 창문에서 뛰어내리겠다고 위협하는 결연한 장면 등은 독자들을 열광시킨 타고난 소설가 스콧의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 준다. 목숨이 걸린 위기의 순간에도 완벽한 문장으로 주고받는 대화는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하지만 서민들의 해학적인 대사는 생동하고 날카롭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유럽에서 작가 스콧의 인기와 권위는 절대적이었으나 점차 그의 광채는 인간의 내면적 문제, 심리적 병리를 심층 탐구하는 문학을 선호하는 독자의 취향에 밀려 퇴색했다. 그러나 스콧을 바로 알아야 유럽의 낭만주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최근에 일고 있다.

스콧은 역사를 사랑했고 역사에 빗대어 동시대인들을 깨우치고 싶은 진실들이 있어 20여 편의 장편 역사소설을 써 냈고, 출판인이던 친구가 파산하자 친구의 빚을 갚기 위해 무리하게 집필을 계속하다가 과로사했다. 친구의 빚은 그의 사후 인세로 모두 갚았다. 법률가이면서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스콧은 개인적 처신에서도 공익과 의리에 충실한 기사다웠다.
● 아이반호 줄거리는

12세기 영국은 토착 세력 색슨족과 지배 계급 노르만족의 반목으로 험악했다. 노르만 왕실에도 내분이 있었다. 1194년에는 직접 기사들을 이끌고 십자군원정에 나간 ‘사자왕’ 리처드를 대신해서 그의 동생 존(후에 존 왕)이 섭정을 하고 있었다. 존은 왕위를 찬탈하려고 동방에서 귀국 중인 형 리처드를 국외에서 살해할 공작을 한다. 이때 무술 경기가 열린다.

무술 경기는 중세의 국민 스포츠였다. 무명의 기사에게는 등용문이었고 이름난 기사에게는 명성을 한층 드높일 기회였다. 물론 포상도 막대했다.

이틀에 걸쳐 열리는 무술 경기의 첫날 개인 대결에서 파장이 가까워 등장한 한 무명의 기사가, 승승장구하던 존 왕 수하의 노르만 기사 다섯 명을 모두 낙마시킨다. 승리한 기사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익명을 고집한다.

이튿날 단체 혼전 경기에서는 노르만족 기사들과 색슨족 기사들이 대결한다. 첫날 현란한 경기를 펼쳤던 무명의 기사가 집중 공격을 받아 위태로워지자 방관하고 있던 검은 갑옷의 흑기사(黑騎士)가 그 편에 가담해서 전세를 반전시키고는 사라진다. 무명의 기사가 승리의 면류관을 쓰기 위해 투구를 벗으니 아이반호 경(卿) 윌프리드였다.

아이반호는 노르만 왕 리처드를 따라 십자군원정에 갔기 때문에 색슨 왕실 부활운동의 중심인물인 아버지 시드릭 경으로부터 절연당한 자식이었다. 경기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아이반호는 승리의 면류관을 쓰자마자 쓰러진다.

중상을 입은 아이반호는 자신이 이틀 전 생명을 구해 준 유대인 아이작의 딸 레베카의 응급처치로 살아난다. 레베카는 아버지와 함께 아이반호를 자기 집으로 옮기는 도중에 시드릭 경 일행과 만난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곧 세 명의 강력한 노르만 기사와 그 부하들에게 납치돼 한 성에 감금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셔우드 숲의 무법자들―노르만 귀족들의 수탈로 생계를 잃고 도적이 된 락슬리(전설의 로빈후드)와 그의 부하들―은 흑기사와 합세해서 그 성을 포위 공격한다. 힘겨운 전투 끝에 성은 함락되고 포로들은 구출되지만 레베카는 그를 탐내는 부아길베르에 의해서 템플기사단 사원으로 납치돼 간다. 그런데 그 기사단의 단장이 레베카를 마녀재판에 회부한다. 레베카는 마녀로 몰려 화형 선고를 받지만 아이반호가 그녀의 챔피언으로서 부아길베르와 싸워 이김으로써 구출된다.

색슨인들과 유대인을 사지에서 구해 준 흑기사는 변장하고 잠입한 사자왕 리처드였다. 리처드는 신분을 감추고 다니며 국내 사정을 살피는 동안 색슨인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기질과 처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는 왕좌를 되찾은 후 색슨인들에게 화해와 회유의 손길을 내민다. 색슨인들도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어 색슨 왕국 복원을 위한 소모적 투쟁을 단념하고 리처드를 왕으로 받들게 된다. 그들 모두의 적인 존의 음모가 분쇄된 것은 물론이다.

※다음 주에는 새뮤얼 리처드슨의 ‘클래리사’가 소개됩니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