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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유영]무이자 할부의 경제학

입력 | 2013-02-13 03:00:00


김유영 경제부 기자

올해 38세인 회사원 A는 재테크에 관한 한 철저한 ‘짠돌이’다. 저축이든 소비든 단돈 100원이라도 남기고 아끼기 위해 철저하게 재고 따지는 편이다. A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계산대에서 점원이 결제 방법을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3개월 할부”라고 응답했다. ‘무이자’라는 조건에 끌렸기 때문이다. 그가 지난 한 해 동안 3개월 할부로 결제한 금액은 얼추 600만 원가량이다.

만약 3개월 할부가 무이자가 아니었다면 A가 물어야 하는 수수료는 4.3%. 즉 A로선 한 해 동안 25만8000원의 금융비용을 아낀 셈이다. 카드 연회비 1만 원을 감안해도 24만 원이 넘는 이득을 봤다고 A는 뿌듯하게 여겨왔다.

하지만 A는 앞으로 이런 방식의 카드 재테크를 하기 어렵게 됐다. 이달 18일부터 카드사들이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중단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초전은 올해 초 시작됐다. 당시 카드사들은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전격 중단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서민들로부터 “팍팍한 살림살이에 일시불 결제는 부담이 된다”라는 불만이 폭주했다. 카드사들은 결국 카드 사용이 많은 설 연휴 이후인 이달 17일까지만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한시적으로 재개하기로 투항했다.

논란은 카드사가 통상 유료인 할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했다는 기형적인 사업 구조에서 비롯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 국내 카드사들은 고객을 늘리고 덩치를 키우기 위해 앞다퉈 무이자 할부 서비스를 내걸었다. 3개월 할부는 기본이고 심지어 12개월 할부까지 등장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2개월 이상의 할부 서비스에 수수료를 매기지만 한국에선 예외였던 셈이다. 2006년 40조 원에 그쳤던 할부 서비스는 2011년 68조 원으로 급증했다.

무이자 할부 서비스에 따른 비용은 1조2000억 원(2011년)으로 이 비용을 전액 카드사가 떠안았다. 그리고 중소형 가맹점으로부터 대형 가맹점(1.5% 안팎)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2∼4%의 가맹점 수수료를 받아 이를 메웠다.

지난해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이 시행되면서 이런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대형 가맹점은 판촉행사 비용의 50%를 초과하는 부분을 카드사에 요구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생겼다. 대형 가맹점에 제공한 무이자 할부 비용을 중소형 가맹점의 수수료로 전가하지 말고 카드사와 대형 가맹점이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이다.

카드사는 대형 가맹점에 무이자 할부 비용을 나누자고 요구하지만 대형 가맹점은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을 대신 낼 수 없다고 고수하고 있다.

누군가가 비용을 내야 한다면, 혜택을 받는 당사자들이 나눠서 내는 게 옳다. 그게 카드사이건 대형 가맹점이건 회사원 A이건 말이다. 무이자 할부 서비스 중단으로 소비자가 당장 불편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는 힘없는 중소형 가맹점이 덤터기를 썼던 왜곡된 시장 구조를 바로잡을 기회이기도 하다.

김유영 경제부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