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엔 인격살인 악플… 죽은 뒤엔 부관참시 악플
울랄라세션 멤버들이 12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된 리더 임윤택 씨의 영정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11일 위암으로 별세한 임 씨는 사후에도 악성 댓글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말기 암이라면서 방송 나와서 할 거 다하고…. 의심받을 짓을 해서는 안 되지. 욕먹어야 한다.’ ‘위암이 아니라 자살이 아닐까요?’
악플은 그의 죽음 뒤에도 이렇게 이어졌다. 도대체 그들은 왜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데서 만족을 얻는 것일까. 그들이 얻는 만족의 실체는 뭐란 말인가. 한 강연회에서 고인을 인터뷰하면서 큰 울림을 얻었던 기자의 마음은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감으로 한동안 흔들렸다.
▶2012년 3월 17일자 A25면 참조 “나도 일진이었지만 약한…”
차마 물을 수가 없던 말을 한 학생이 거침없이 내던졌다. 말기 암 환자가 항암 약물치료를 받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몸부림이 삶의 지푸라기를 놓지 않으려는 절규라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기자는 인터넷을 달궜던 그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임 씨는 웃으며 칠판에 ‘질문1. 아픈 게 거짓말!’이라고 썼다. 그는 “위암 4기는 생존율이 5.5%예요. 괴로워서 인상만 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라고 답했다.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데 무섭지 않냐”는 질문에는 “하루를 살아도 주변 사람을 위해 가치 있게 살자”고 당부했다. 이 학교 선도담당 교사 여인진 씨는 임 씨 사망 소식이 전해진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강연을 들은 학생들이 다른 친구를 배려하고 거친 언행을 자제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고인이 들었으면 기뻐할 이야기다.
악플러들은 이제 “아내와 딸을 남기고 무책임하게 죽었다”며 비난한다. 한술 더 떠 그의 아내와 딸을 겨냥한 악플마저 등장했다. 망나니 같은 인간들의 행태를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하는지, 답답하다. 고인을 한 번도 만난 적 없을 그들이 배설하는 이 파괴적 미움은 어디에서 시작된 걸까.
일반인이라고 악플에서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신상 털기가 시작되면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최근 여대생 A 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성 관련 상담글을 올렸다가 얼굴, 실명, 학교, 페이스북 주소, 사는 곳 등 개인정보가 모조리 악플러들의 손에 공개됐다고 한다.
‘키보드 워리어’(상습적 악플러를 포함한 공격적 성향의 누리꾼)는 명문대 커뮤니티에서도 활동한다. 지난해 10월 서울대 커뮤니티에서는 매점에서 선배에게 손찌검을 한 이 학교 학생의 신상이 악플러 손에 공개됐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장의 말이다. “사법기관이 현실에서 벌어진 상해 사건만큼 악플 같은 사이버상 폭력도 무겁게 다스려야 한다. 악플러에게는 형사 처벌뿐 아니라 민사상 막대한 배상금도 물릴 필요가 있다.”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나오는 지적이다. 사법당국도 이제는 이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울랄라세션이 지난해 발표한 미니음반의 타이틀곡 ‘아름다운 밤’을 작곡한 가수 싸이도 고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12일 귀국했다. 싸이는 환하게 웃는 영정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눈물만 글썽였다.
▶ [채널A 영상] “임윤택, 너무 힘들었는지 직접 호스 뽑기도”
▶ [채널A 영상] 임윤택, 서른 셋 화려한 생 마감…싸이 등 추모 이어져
박훈상·김수연 기자 tigermask@donga.com
▲ 동영상 = 울랄라세션, 故임윤택 영정 앞에서 통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