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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3차 핵실험]核암초 부닥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수정하나

입력 | 2013-02-13 03:00:00


‘비핵화라는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12일 북한의 3차 핵실험 뒤 내놓은 메시지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박 당선인은 이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속담을 인용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우리만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북한이 성의 있고 진지한 자세와 행동을 보여야 함께 추진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핵무장 의지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출발도 하기 전에 좌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에 이은 핵실험은 ‘핵무장 프로세스’가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한반도 안보의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이 북한의 핵실험 강행 의사 이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유화책이 아니다” “강경 일변도일 때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어려워진다”고 밝힌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으로 읽힌다. 위협→도발→협상→보상의 패턴이 반복돼온 기존의 비핵화 정책이 실패했다는 점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구상은 핵실험과 같은 북한의 도발에 취약점이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관계가 쳇바퀴 돌 듯 진전되지 못하는 건 남북 간 신뢰가 없기 때문이라는 박 당선인의 인식에서 시작했다. 신뢰를 회복하고 비핵화 진전이라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먼저 북한에 손을 내미는 선의(善意)가 필요하다는 게 애초 구상이었다.

대선캠프 외교안보팀의 핵심 인사들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범 초기만 해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3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는 대북 인도적 지원(식량지원 포함), 2단계 농업·조림 등 낮은 수준의 남북 경제협력, 3단계는 교통·통신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비전코리아 프로젝트다. 2단계까지 비핵화 같은 조건을 걸지 않고 정치 상황과 구분해 추진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렇게 정부가 지속적으로 노력하면 북한도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 정부를 신뢰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비핵화의 길을 선택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남북관계 정상화가 가능하다는 것.

그러나 이번처럼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며 기존 태도를 고수할 경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첫 단추를 꿰기도 어려워진다는 점이 증명된 것이다. 대선캠프 내의 전문가들조차 “북한의 태도 변화를 낙관적으로 기대하고 이를 전제로 정책 추진을 구상한 건 취약점이다. 북한의 도발에 전략적 대응방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북한이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는 한 박 당선인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미뤄두고 대북 강경책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가안보실장으로 내정된 김장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간사도 12일 박 당선인에게 긴급보고를 하기에 앞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수정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핵실험이 확실하다면 옛날 같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이날 “국제사회는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이후에도 당분간 남북대화보다 정부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강경책이 지속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한편에선 북한의 핵실험은 이미 예견된 것으로 경색 국면을 오래 끌면서 ‘대화의 창’을 완전히 닫으면 오히려 북한의 핵개발을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대북 전문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신뢰가 없으니 신뢰를 쌓아가겠다는 것인데, 시작도 하기 전에 북한이 신뢰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강경책으로 돌아서면 안 된다”며 “이명박 정부의 강경책을 답습하면 5년 뒤 결과가 뻔하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 측 외교안보팀 관계자들은 “진보정권 10년의 햇볕정책도, 이명박 정부 5년의 대북 강경책도 아닌 진화된 제3의 길을 갈 것”이라고 말해 왔다. 박 당선인의 대북정책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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