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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안영식]다문화는 숙명이다

입력 | 2013-02-13 03:00:00


안영식 스포츠부장

국내 남자 프로농구는 팀당 외국인 선수를 2명까지 보유할 수 있다. 하지만 2명이 동시에 코트에 나설 순 없게 제한하고 있다. 프로농구판이 ‘용병 잔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TV 중계를 보다 보면 어느 팀은 외국인 선수 2명이 모두 뛰는 듯한 장면이 종종 눈에 띈다. 그러나 착각이다. 그 2명 중 한 명은 바로 ‘귀화 혼혈 선수’인 것이다.

다문화가정은 ‘국제결혼가족’ ‘혼혈인가족’을 대체한 용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남자 프로농구는 온갖 유형의 다문화가정이 망라된 ‘한국 다문화사회의 축소판’이다.

‘귀화 혼혈형제 4인방’ 문태종(전자랜드)-문태영(모비스), 이승준(동부)-이동준(삼성)이 펼치는 선의의 경쟁은 아름답다. 전태풍(오리온스)은 자신처럼 어머니가 한국인인 혼혈인 전미나 씨와 결혼해 아들까지 낳고 알콩달콩 살고 있다. 게다가 국내 남자 프로농구 팀에는 혼혈인 감독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하프 코리안’의 드문 성공 사례다. 대부분의 다문화가정 2세는 다른 피부색과 외모 때문에 어린 시절을 눈물로 지새우고 커서도 주류 사회 진입이 녹록지 않다.

주한미군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가 부모인 힙합 및 R&B 가수 윤미래가 부른 ‘검은 행복’에는 ‘뼈에 사무치는 슬픔’이 배어 있다.

‘유난히 검었었던 어릴 적 내 살색/사람들은 손가락질해 내 Mommy한테/내 Poppy는 흑인 미군/어렸지만 엄마의 슬픔이 보여/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은 죄책감에/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난 내 얼굴을 씻어내/하얀 비누를 내 눈물에 녹여내/음악은 색깔을 몰라/세상이 미울 때 음악이 날 위로해주네/세상이 미울 때 음악이 날 일으켜주네.’

언젠가는 모든 인종이 하나로 융합되는 무(無)인종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미국은 2인종 이상이 섞인 혼혈인이 2000년 700만 명에서 최근 4500만 명까지 늘었다고 보도했다. 이런 추세라면 다음 세대는 자기 자신을 무인종 또는 다(多)인종으로 인식할 것이라고 한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인구통계학자 윌리엄 프레이는 이를 ‘인종 색맹세대’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이제는 색깔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한 게 아닐까. 실상 모든 골프 볼은 컬러 볼이다. 흔히 말하는 ‘일반 골프 볼’은 커버에 흰색 안료를 넣은 ‘흰색 컬러 볼’인 것이다. 인종도 마찬가지다. 투명망토를 쓰지 않는 한 지구상 모든 인간은 ‘유색 인종’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140만 명을 넘어선 한국은 더이상 단일 민족, 단일 문화 국가가 아니다. 한국의 다문화가정은 2012년 21만 가구를 넘어섰고 매년 2만 명 이상 ‘다문화 2세’가 태어나고 있으며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숙명(宿命)이라고 한다.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다. 이미 한국은 구조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주 설문조사에서 70%가 “한국인 근로자를 구할 수 없어 외국인을 고용한다”고 답했다.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보다 가난한 저개발 국가에서 왔다고 함부로 대하는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는 시대착오적 행태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대상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다. 2년 연속 교역규모 1조 달러를 돌파하며 지난해 세계 8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다문화 포용성은 조사 대상 50여 개국 중 몇 년째 꼴찌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국격(國格)에 어울리게 글로벌 스탠더드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안영식 스포츠부장 ysa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