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망 좁혀지자 도주하려다 '덜미'엉뚱한 인물 수배로 초동수사 혼선
전북 전주 롯데백화점을 폭파시키겠다고 협박한 용의자가 13일 경찰에게 붙잡혔다.
전주 완산경찰서는 이날 오전 0시경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백모 씨(45)의 원룸 앞에서 잠복하던 중 도주하려고 짐을 싸 나오던 백 씨를 검거했다.
▼검거…범행현장 배회 승용차가 단서
경찰은 7일 범행 현장을 배회하던 산타페 승용차의 소유주를 추적해 용의자인 백 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차량은 백 씨가 모닝 승용차를 폭파시킨 효자공원묘지와 협박 전화를 건 덕진동의 한 공중전화 박스 주변에서 잇따라 발견됐다.
경찰은 이 차량이 용의자 백 씨의 원룸 앞에 주차된 것을 확인하고 12일 저녁부터 잠복에 들어갔다.
백 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집에 있던 짐을 차량에 옮겨 실은 뒤 차를 타고 도주하려 했으나 경찰이 가로막자 후진을 시도, 원룸 기둥에 부딪히면서 붙잡혔다.
원룸을 수색했지만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추가 조사를 한 뒤 백 씨에 대해 절도, 방화, 협박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범행 동기
백 씨는 강도와 특수절도 등 전과 19범으로 지난 6월 출소한 뒤 한때 골프장에서 아르바이트했으나 최근에는 특별한 직업 없이 지냈다.
또 신용불량자인 백 씨는 자신 명의의 휴대전화나 차량 등을 소유할 수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경찰은 생활이 곤궁한 백 씨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백 씨의 아내와 자녀는 서울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백 씨가 '그동안 어렵게 살았다'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면서 "백화점을 협박해 돈을 뜯으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어 "백 씨의 성격적 결함이나 가정불화 등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백 씨는 협박 초기 '자살사이트 운영자'라고 자처했지만, 이 같은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범행 후 매형 명의의 스마트폰으로 '롯데 협박범', '축제라이브'(모닝 승용차를 훔친 술집) 등을 수차례 검색했다.
또 자신의 컴퓨터로 '무선송수신기'(차량 폭파에 사용 추정), '중국 밀항', '백만 원 무게?' 등 범죄와 관련한 단어들도 검색했다.
특히 "롯데백화점 전주점을 폭파시키겠다"며 5만 원권 10㎏(4억5000만 원 상당)을 요구했던 그는 단순 협박이 아님을 알리려고 승용차를 폭파시키기는 대범함을 보였다.
백 씨는 7일 오후 2시30분경 방송기자에게 "백화점에서 3㎞ 정도 떨어진 효자공원묘지 주차장에 주차된 모닝 승용차를 폭파시키겠다"고 말한 뒤 실제 LP가스통을 승용차 안에 넣어 폭파, 이를 촬영케 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불에 탄 차량은 4일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에서 도난당한 승용차였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백 씨가 범행 사실은 부분적으로 인정했으나 동기 등에 대해서는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는 이야기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고 있다"고 전했다.
▼단독범행 추정
경찰은 일단 "백 씨가 공범 없이 단독으로 범행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백 씨가 타고 다닌 차량의 소유주가 백 씨 매형인 이모 씨(52)로 확인됨에 따라 한때 이 씨의 범행 연루 여부 가능성도 조사했지만, 연관성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백 씨가 훔친 모닝 승용차로 이동하면서 또 다른 1명의 일행과 동행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도 CC(폐쇄회로)TV를 분석하고 있지만 확인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수배전단과 다른 용의자
경찰은 사건 직후 모닝 승용차 폭파 현장에서 찍힌 40~50대에 검은색 등산복과 갈색 계열 가방을 멘 인물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전국에 공개 수배했다.
하지만 수배 전단 인물과 달리 검거된 백 씨는 키가 제법 크고 몸도 건장해 경찰이 수사 초기 엉뚱한 사람을 지목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수배전단과 검거된 용의자는 전혀 다른 인물"이라면서 "1개 팀이 별도로 수배전단 인물을 추적했기 때문에 수사 전반에 큰 지장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폭파 협박에서 검거
자살사이트 운영자임을 자처한 백 씨는 지난 7일 효자공원묘지에서 승용차를 폭파한 뒤 방송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범행 계획을 알렸다.
백 씨는 "우리 회원들이 백화점에도 폭발물을 설치했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백화점 고객들이)대피하면 (백화점을) 폭발시키겠다. 5만 원권으로 10㎏를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당시 백화점 안에는 영화 관람객 등 3000¤4000명이 있었다.
자칫 대형 인명사고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경찰과 백화점 측은 백 씨의 요구대로 대피방송을 하지 않고 폭발물이 설치됐는지를 우선 확인했다.
다행히 폭발물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자 백화점 측은 고객들을 대피시키고 1시간 앞서 영업을 종료했다.
이후 백 씨는 장소를 옮겨가며 방송기자에게 '협상금을 가져오라'는 연락을 했고, 경찰은 그 뒤를 쫓았으나 이를 눈치 챈 백 씨가 종적을 감추는 바람에 1차 검거에 실패했다.
설 연휴까지 겹쳐 지지부진했던 수사는 경찰이 백 씨가 타고 다닌 산타페 승용차를 찾아내면서 속도를 냈다.
이 차량은 백 씨가 모닝 승용차를 폭파시킨 효자공원묘지와 협박 전화를 건 덕진동의 한 공중전화 부스 주변에서 잇따라 발견됐었다.
경찰은 12일 저녁부터 이 차량이 백 씨의 원룸 앞에 주차된 것을 확인하고 잠복, 짐을 싸서 도주하려던 백 씨를 현장에서 검거했다.
<동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