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주간
MB는 이날 모임의 마무리 발언에서 4대강 사업에 끝까지 반대하던 가톨릭 주교에게 예를 갖추어 국토해양부 장관을 보냈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주교가 설명을 듣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장관은 헛걸음을 했다. MB는 “낯선 사람의 고해도 들어주면서 국책사업의 진행상황에 대한 설명을 안 들어주는 신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러고 고해성사와 관련한 농담을 했으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최근에는 감사원도 4대강 사업의 뒤통수를 쳤다. 감사원은 4대강의 16개 보 가운데 15개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는 감사보고서를 내놓았다. 국토부와 감사원이 적용한 기준이 달라서 다툼의 여지가 있었다. 감사원은 감사보고서에는 ‘미흡’이나 ‘부적절’이라는 지적을 해놓고 보도자료에는 ‘부실’이라는 표현으로 강도를 높였다. 일부 언론은 이를 ‘총체적 부실’로 규정했다.
고별 만찬의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MB에게 덕담을 했다. 한 참석자가 “MB가 747(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 공약은 지키지 못했지만 미국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한국은 플러스 성장을 했다”고 평가했다. MB는 감격스러웠던지 마무리 발언에서 꽤 길게 부연 설명을 했다. MB는 “2009년 경제위기 때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는 독일의 경제성장률마저 ―5.1%를 기록했을 때 한국은 0.3% 성장을 했다. 이것이 한국경제의 신뢰도를 높여 일본을 앞지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MB는 “기적의 0.3%”라고 자찬(自讚)했지만 세계 경제위기와 저성장으로 서민의 삶이 팍팍해져 대통령의 인기는 없었다.
MB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당에서 쫓겨나지 않은 대통령이 없었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정권은 재창출됐고 MB는 당적을 유지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들이 퇴임을 전후해 불행을 겪는 정치문화는 지속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감옥에 갔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이 교도소에 들어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던 중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MB도 이 점에 관해서는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사실 촛불시위가 촉발한 것이었다. MB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진보단체 사람들이 다 모여서 정권을 뒤흔들겠다는 계획이었다”고 광우병 촛불시위의 성격을 규정했다. MB 정부를 3개월간 마비시킨 촛불시위가 수그러든 뒤 노 전 대통령의 평생지기인 박연차 씨의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이 세무조사를 바탕으로 검찰 고발이 이뤄졌고 대검 중앙수사부가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을 따르던 사람들은 MB가 정치 보복을 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검사와 용기 있게 증거와 법리로 결백을 다투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