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 중독은 뇌의 문제…약물-정신치료 병행해야
김영화 강동소아정신과의원 원장
필자가 며칠 전에 만난 외국인 성직자 A 씨는 이렇게 우리나라의 왜곡된 성문화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섹스중독자를 위한 단체인 ‘익명의 성중독자 모임(Sex Addicts Anonymous)’을 이끌고 있다. 아무도 성중독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인 2007년부터 지금까지 모임 후견인으로 일하고 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예요. 왜 한국에는 성중독자가 없었겠어요. 2003년에는 주한 외국인들을 위해 처음 모임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모두 한국 사람이죠.”
“섹스를 쾌락 때문에 한 게 아니에요. 마약중독자가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쇠사슬에 매여 끌려가는 노예와 같이 비참해요. 항상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껴도 충동이 올라오면 조절되지 않았습니다.”
“일단 발동이 걸리면 섹스 생각 때문에 직장에서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성중독자들은 자신의 행동으로 가족관계를 망치고, 사회적으로도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자신의 충동을 괴로워한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한줄기 따뜻한 햇살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었어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성범죄 재범을 막기 위해 성범죄자에 대해 전자발찌 착용과 신상공개에 더해 성충동 약물치료(일명 화학적 거세)를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시행되는 성충동 약물치료는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점과 고비용(1인당 연간 치료비용이 500만 원 정도)이라는 점 때문에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그렇다면 성범죄의 재범률을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성범죄를 다루는 실무자들은 “성범죄를 근절하려면 화학적 거세만으론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력한 처벌정책만으론 성범죄를 뿌리뽑기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의 한 연구에서는 물리적 거세(고환제거술) 후에도 18%에서는 성욕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화학적 약물치료뿐 아니라 물리적 거세도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성충동이란 성호르몬의 문제일 뿐 아니라 충동을 조절하는 뇌의 문제다. 그리고 성범죄자들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성의식은 화학적 약물치료로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성범죄의 재범을 보다 확실하게 막기 위해서는 성욕을 억제하는 화학적 거세와 함께 성충동에 대한 통제력을 증가시키는 정신과 치료도 병행해야 한다. 성중독자가 모두 성범죄자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범죄자의 50% 이상은 성중독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중독을 치료하는 것은 성범죄의 예방과 재범률 감소에 꼭 필요하다. 성중독을 치료하는 수단으로는 정신과 치료와 함께 익명의 성중독자 모임 같은 그룹치료 활동의 효과가 매우 크다.
성중독자들이 모여 재활의 의지를 다지는 성중독자 모임은 성중독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어린 시절의 학대 같은 개인의 경험으로 인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길을 열어준다. 이제 우리 사회는 성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의 하나로 성직자 A 씨가 이끄는 것과 같은 익명의 성중독자 모임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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