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컨티넨탈 인스파 제공
옷매장엔 꽃향기, 식당엔 맛향기… “고객 84% 늘어났어요”
힐링, 호감, 휴식…. 향기의 효과를 깨닫는 이가 늘면서 향초부터 디퓨저까지 다양한 향기 아이템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우드윅. 호텔신라 제공
센트 마케팅의 시대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의류브랜드 ‘후아유’ 매장 안에 설치된 향기 박스. 천장에 달린 에어컨 옆에 붙어있어 쉽게 눈치 챌 수 없지만 매장 전체에 강렬한 향을 발산한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향기 컨설팅 업체인 ‘아이센트’의 최아름 대표(29)가 말했다. 최 대표는 이 매장에 맞는 향기를 찾아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향기박스는 머리카락 굵기의 80분의 1밖에 안 되는 미세한 입자를 매장 곳곳에 분사했다. 손님이 많이 오는 시간대에 자동으로 뿌려지도록 설정되는 게 특징이다.
이 매장의 향기를 관리하는 아이센트는 미국에 본사를 둔 국내 최초의 향기 컨설팅업체다. 현재 80여 개 업체와 계약하고 브랜드 이미지에 맞는 센트 컨설팅과 제품을 제공해주고 있다. 의류 매장을 비롯해 전자기기 매장, 쇼핑몰, 동물병원 등 고유의 향기를 필요로 하는 고객들은 점차 다양해지는 추세다. 최 대표는 “음식점에서는 향기를 안 쓴다고 생각하지만 요즘에는 레스토랑이나 빵집에서 식욕을 자극하기 위해 음식 향기를 별개로 쓰는 경우가 많다”라고 귀띔했다.
많은 기업이 굳이 ‘센트 컨설팅’을 받기 위해 이 업체를 찾는 이유는 마케팅 영역에서 향기의 중요성이 그만큼 부각되고 있어서다. 후각을 자극해 고객이 오래 머무르도록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유의 향기로 제품 브랜드를 오래 기억하게 하는 효과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후각은 오감 중 유일하게 가장 직접적으로 감정을 조절하는 뇌의 변연계와 연결돼 있다. 사람들은 후각을 통해 이유를 알 수 없는 호불호를 결정짓는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사용돼야 하는 분야지만 동시에 가장 매력적인 마케팅 도구이기도 하다.
미국의 한 조사에서는 향을 활용한 매장과 활용하지 않은 매장을 비교한 결과 향이 있는 매장에 84%가량 고객이 더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의류 브랜드 ‘아베크롬비 앤드 피치’는 매장에 자사의 향수인 ‘피어스’를 이용해 브랜드를 어필한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서울 여의도 IFC몰에 입점한 아베크롬비의 자매 브랜드 ‘홀리스터’ 역시 동일한 향기를 매장에 쓰고 있다. 이 같은 ‘센트 마케팅’은 국내에선 아직 초기 단계지만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레저 업계를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센트 마케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특급호텔들도 호텔 로비에서 객실 바디용품에 이르기까지 호텔의 개성을 상징하는 독특한 향을 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인터컨티넨탈호텔 제공
최근에는 호텔업계 역시 까다롭고 예민한 소비자들의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향기 설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웨스틴 체인 호텔에는 향기를 뿜는 기계가 설치돼 있어 동일한 화이트 티 향이 잔잔하게 느껴진다. 섬세한 우아함과 고급스러운 은은함을 한층 강조해 주는 향이라고 호텔 측은 설명했다. 이 호텔에서 신혼부부를 위한 ‘베이비문 패키지’를 이용하면 미국 패브릭 코스메틱 브랜드인 ‘런드레스’의 베이비 패브릭 프레시 제품을 침구류에 미리 뿌려 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패키지를 이용하는 부부에게 향기를 통해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란 것이 호텔 측의 설명이다.
그랜드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와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는 향기에 대한 고객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올해부터 객실용품인 어메니티를 역시 깊은 럭셔리 보태니컬 향기 브랜드인 아그라리아로 교체했다. 아그라리아는 자연에서 채취한 보태니컬 오일을 사용해 장거리 비행의 피로를 풀어 준다. 호텔 측은 여러 가지 향 중에 한국인의 취향을 반영한 레몬 버베나 향기를 사용하고 있다.
JW 메리어트호텔은 아예 전용 시그니처 향인 ‘미묘한 세련미’라는 향기를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다양한 허브향에 감귤향을 더한 향기가 매장 곳곳에서 은은하게 풍기도록 했다.
롯데백화점도 지난해 5월부터 센트 마케팅을 강화했다. 층별로 매장을 관리하는 영업관리자들이 다는 골드 컬러의 꽃 모양 코르사주에 점별로 정해진 향수를 뿌리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내부 회의를 통해 남녀노소,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두루 인기가 높으면서 편안함과 행복감을 주는 장미향(폴스미스의 로즈)을 점 고유의 향으로 지정했다. 본점을 주로 방문하는 한 VIP고객은 “처음에는 매장에서 나는 향기가 신선했는데 지금은 이 향에 익숙해져 맡을 때마다 이곳에서 쇼핑했던 기억이 떠오른다”라고 말했다.
쉽고 간편한 ‘향기 인테리어’
디퓨저는 협탁이나 콘솔 위에 올려두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테리어 포인트가 되고 향초보다 은은한 향을 즐길 수 있다. 알로라의 디퓨저 ‘아란시아’. 까사미아 제공
까사미아 마케팅팀의 최유리 선임은 “과거에는 인테리어라고 하면 테이블, 체어 같은 가구나 소품 등에 치중했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장소에 잘 어울리는 향기로 인테리어 효과를 더하려고 한다”라며 “트렌드에 민감한 VIP들이 주로 찾는 까사미아 압구정점의 경우 직접 해외에서 수입해 온 여러 브랜드의 디퓨저와 향초 등을 판매하는 코너를 따로 마련해 두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일부 제품은 품절을 빚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향기로 공간을 디자인할 때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사항들이 있다. 전문가들은 “향초의 경우 고루 퍼지려면 한 시간 이상 세 시간 미만으로 켜 둬야 향이 잘 퍼지면서도 실내 공기를 탁하게 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끌 때는 입으로 불지 말고 뚜껑을 덮어 꺼야 한다. 향초는 눅눅한 실내 공기를 건조시켜 주는 효과도 있는 데다 디퓨저보다 향이 강해 상대적으로 강한 향을 선호하는 사람이 활용하면 좋다. 오일이 든 병에 긴 막대기(리드)를 꽂아 향을 내는 디퓨저는 은은하게 향을 퍼뜨리는 데 효과적이다. 향의 강도는 리드의 개수로 조절하면 된다. 요즘은 각양각색의 다양한 디자인으로 디퓨저가 출시되고 있으므로 콘솔 위 등 포인트를 주고 싶은 곳에 배치해 인테리어 포인트로 활용하는 것도 좋다.
향은 개인 취향에 따라 선호도가 천차만별이지만 기본적으로 공간의 성격을 고려해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침실은 은은한 라벤더나 허브 등 심신 안정을 돕는 향이 어울린다. 우드나 머스크 계열은 욕실, 화사한 플로럴은 거실, 집중력을 높이는 앰버 계열은 서재에서 사용하면 좋다.
박선희·염희진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