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시혜대상으로 여긴 과거정부 실패 되풀이 말아야”
송재희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이 12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중소기업 정책에 관해 조언하고 있다. 그는 “올바른 중소기업 정책 없이는 일자리 창출, 중산층 육성, 균형발전 같은 과제를 풀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박근혜 정부가 중소기업을 중요하게 다룰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지 잘 모르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박 당선인은 당선 직후 중기중앙회를 방문했고, 정부 부처 업무보고도 중소기업청부터 받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손톱 밑 가시’ 내용을 듣는 간담회를 중기중앙회에서 열지 않았나. 이런 행보는 아주 긍정적이다. 중소기업계도 기대가 크다. 특히 당선인이 대선 전후에 중소기업 정책 현안에 대해 일관된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세부 정책은 새 정부가 출범한 뒤 하나둘 발표될 것으로 본다.”
“중소기업 정책의 목적을 달리 생각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 중산층 확대 및 양극화 해소, 지역 간 균형 발전 같은 큰 국정과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중소기업 정책을 활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중소기업 정책은 ‘다목적’이다. 실제로 그런 과제들을 중소기업 정책 없이 해결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정책에서 중소기업 문제의 우선순위가 달라진다.”
―중소기업 정책들의 우선순위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가. 어떤 중소기업 정책부터 먼저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나.
“먼저 시장에서의 불균형, 불합리한 제도, 불공정 거래 등 ‘3불(不) 문제’를 해결하는 일부터 시작해 건강한 기업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그러면 그 안에서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커 나갈 것이다. 정부의 지원정책은 업종과 업태, 현장에 맞게 맞춤형으로 펼쳐야 한다. 그렇게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을 늘려 거기서 일자리가 나오고 중소기업 직원들이 중산층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중소기업 정책은 성격상 여러 부처로 나뉘어 집행될 수밖에 없다. ‘컨트롤 타워’가 중요해질 텐데 새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그런 정책을 추진할 대통령과 부활하는 경제부총리, 각 부처의 역할 분담 방안은….
“당선인은 ‘중소기업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지만 대통령이 중소기업만 챙길 수는 없다. 대통령은 가끔 중소기업 정책을 점검하고 ‘계속 관심이 있다’는 신호를 국무위원들에게 보내는 걸로 충분하다. 경제부총리는 각 부처의 중소기업 정책을 평가해 선택과 집중을 하고 예산과 세제 지원 문제를 신경써 줬으면 좋겠다. 각 부처 장관들은 ‘중소기업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중소기업 문제를 ‘곁가지’ 정도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얘기다. 장관들이 대통령의 철학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지방정부로도 이런 게 퍼진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청장이 가져야 할 덕목은….
“중기청장은 무엇보다 현장 전문가여야 한다. 중소기업 문제는 워낙 복잡하고 다양한 데다 정책 수요자들에게 정부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때가 많다. 현장을 잘 알고 소통하는 사람, 중소기업에 애정이 있는 사람이 중기청장이 돼야 한다.”
“그런 비판에는 좀 오해가 있다. 중소기업 생태계는 기본적으로 ‘다산다사(多産多死)형’이다. 매년 중소기업 80만∼90만 개가 새로 생겨나고 사라진다. 경쟁에 입각한 도태와 퇴출이 가장 냉정하게 이뤄지는 영역이다. 오히려 은행이나 대기업이야말로 경영이 위험해지면 정부가 개입해서 살리지 않나. 중소기업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전체 정부 예산에서 관련 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국방, 교육, 복지 예산과 비교할 수준이 안 된다.”
―시장에서 퇴출돼야 할 중소기업이 대증(對症)적 정책들 덕에 버틴다는 비판도 있는데….
“이른바 ‘좀비 기업’(수익성이 없는데도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중소기업을 이르는 말) 얘긴데, 물론 분식회계를 하거나 평가기관을 속여 지원금을 타는 중소기업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례는 법으로 처벌하면 된다. 중소기업 지원체계를 효율화하는 작업은 필요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 중소기업 전체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다고 볼 상황은 아니다.”
―중소기업 대통령을 표방하는 것이 대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잘못된 생각이다.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이슈는 전체 중소기업 정책의 10%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기업 정책과 중소기업 정책은 서로 보완관계로 봐야지, 대립과 갈등관계라고 이해하면 곤란하다. 새 정부는 국가 전체적으로 대기업도 키우고 중소기업도 키워 ‘쌍끌이’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어야 한다. 대기업이 외국에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한다. 다만 대기업들은 ‘중소기업과 같이 성장하지 않고서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납품단가 조정, 골목상권 침범 같은 쟁점에서 중소기업 편을 드는 것은 대기업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되지 않을까.
“중소기업 정책 전문가들이 고민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걸러서 나온 얘기다. 상식선에서 대기업들도 이해하는 문제라고 본다. 이걸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으로 매도한다면 너무 안타깝다. 중소기업의 협동조합이 납품단가 조정 협상권을 갖거나 징벌적 손해배상제 적용범위를 늘리는 정도로 대기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견기업 지원 정책은 어떻게 해야 하나.
“기업의 ‘성장 사다리’를 만든다는 측면에서 중기청이 소기업, 중기업, 중견기업 업무를 다 다루게 된 것은 잘된 일이다. 중견기업 지원은 단순히 중소기업이 누리는 혜택을 연장하는 차원을 넘어 해외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게 방향을 잡아야 한다. 핵심 역량을 키워 ‘히든 챔피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역대 정부도 다 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손톱 밑 가시’가 다 뽑히지 않았다.
“새로운 정책과 제도가 생길 때마다 새 규제도 생긴다. 특히 정부조직을 개편하면서 새 시스템이 도입되는 이때에도 정책 당국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가시들이 박힐 것이다. 제도를 만들 때 중소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평가를 강화하고, 존속기한이 끝나면 규제를 자동 폐기하는 일몰제를 확대해야 한다. 좀 전에 말한 중소기업정책평가단이 이런 작업을 하면 좋지 않을까 싶다.”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나서는 기관이 중기청, 중기중앙회, 중기옴부즈만실로 제각각인데….
“애로사항을 찾고 모으는 작업은 여러 기관이 하되 처리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중기중앙회, 벤처기업협회, 옴부즈만실 같은 곳이 손톱 밑 가시를 듣고 모으는 ‘뿌리’이고, 그걸 한데 모으는 중기청을 ‘줄기’라 할 수 있겠다. 청와대나 총리실이 중기청 위에서 모니터링을 해줘야 한다.”
―사회의 수준을 끌어올리려고 제도를 만들다 보니 그게 영세 기업에는 손톱 밑 가시가 되기도 한다.
“고민되는 문제다. 노동, 환경, 위생, 안전 같은 분야가 특히 그렇다.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영역인데 규제를 하지 않을 수는 없고…. 그런데 국제기준보다 지나치게 앞서가는 분야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현장과 현실을 봐 가며 사회 수준을 끌어올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특히 소상공인 문제에 대해 조언한다면….
“소상공인진흥공단과 기금을 만든다는 보도를 봤는데 적절한 정책이라고 본다. 다만 ‘모든 소상공인을 다 지원하겠다’는 자세는 곤란하다. 원칙과 타깃을 정확히 정해야 한다. 또 소상공인 대부분이 교육 수준이 높지 않다. 이들이 핵심 역량을 키울 수 있게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송재희 상근부회장 프로필
△ 1956년 대전 출생
△ 1974년 대전고 졸업
△ 1979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 1979년 행정고시 합격(23회)
△ 1980년 공업진흥청 사무관
△ 1996년 중소기업청 자금지원과장
△ 2002년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사무국장
△ 2006년 경기지방중소기업청장
△ 2008년 중소기업청 차장
△ 2009년 중소기업중앙회 상근부회장(현)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