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해외 전지훈련 못 말리는 사건과 해프닝
그러나 혈기왕성한 대규모 인원이 낯선 땅에서 50일 가까운 긴 시간을 보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한다. 과거에 비해 선수들이 술을 멀리하고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 사고는 별로 일어나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지훈련 캠프는 불미스러운 일과 황당한 해프닝으로 시끄러워지곤 했다.
# 감독도 못 알아본 그는 누구?
# 깜짝 이벤트에 감전될 뻔한 이대수
전지훈련을 떠난 선수들은 설 명절을 머나먼 이국에서 보낸다. 2004년 SK 스프링캠프에서 있었던 해프닝은 설을 앞둔 선수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가 자칫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한 경우다. 구단은 숙소와 훈련장 주변 10곳에 보물을 숨겨놓고, 찾아내는 선수에게 상품을 주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모처럼의 깜짝 행사에 선수들은 눈에 불을 켜고 보물을 찾아나섰다. 당시 SK 소속이던 이대수(현 한화)는 숙소 복도에서 불이 나간 전등 1개를 발견했다. 다른 전등은 멀쩡한데 그것만 꺼져 있는 걸 보고 ‘틀림없이 전구 속에 보물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그는 전등을 만지작거리다 전선에 손이 닿았는지 그만 감전되고 말았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지만 후유증이 약간 남아 전지훈련 내내 애먹었다. 이후 SK에서 보물찾기 이벤트는 자취를 감췄다.
# 코끼리 감독에 뿔나 집단행동
김응룡 한화 감독이 KIA 전신인 해태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던 1996년. 하와이 전지훈련에서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정면충돌하는 대형 사건이 터졌다. 이름 하여 ‘하와이 항명사건’. 지금이나 그때나 절대 권력이던 코끼리 김 감독에게 선수들이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코칭스태프가 선수관리를 위해 한밤중 불심검문을 한 일이 발단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선수와 코치가 몸싸움을 벌였고 무기(?)가 등장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결국 선수들이 짐을 챙겨 호놀룰루국제공항으로 향하는 단체행동으로 이어졌으며, 김 감독이 직접 나서서 ‘자율훈련 조건’을 수락한 뒤에야 가까스로 사태가 수습됐다.
# 호세 얼굴에 불이 난 이유
한국 무대에서 수많은 뒷말을 남기고 떠난 롯데 용병 펠릭스 호세. 그는 1999년 전지훈련 장소였던 일본 가고시마에서 깜짝 놀랄 만한 사고를 쳤다. 전지훈련 첫날 열심히 땀 흘린 뒤 동료들과 사우나로 향한 그는 여탕에 아무렇지 않게 침입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물론 의도적인 게 아니라 ‘女’자와 ‘男’자의 의미를 몰라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탕에 있던 여자들보다 호세가 더 놀라 그 까만 얼굴이 불난 것처럼 빨갛게 됐다는 후일담도 전해진다. 훗날 호세가 흥분해 스탠드에 있던 팬에게 방망이를 집어던졌던 일을 떠올리면 여탕 침입 사건은 ‘애교’ 수준이다.
2003년 하와이 전지훈련 중 두산 정수근은 심야 음주폭력 사건에 휘말려 현지 법정에 서는 불상사를 겪었다. 휴식날 밤 주점에서 술을 마시던 동료가 현지 한인들과 몸싸움을 벌이자 그 자리에 동석했던 정수근이 사고를 치고 만 것이다. 긴급 출동한 현지 경찰과 옥신각신하며 몸싸움을 벌였고, 결국 ‘공무집행 방해’와 ‘폭행 혐의’로 하와이 법정에서 450달러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두산은 이후 하와이와의 인연을 끊고 일본으로 스프링캠프를 옮겼다. 정수근은 하와이 사건 이후 수차례 물의를 일으킨 뒤 유니폼을 벗었다.
# 기자 도움 받고 살아난 권혁
2003년 하와이에 캠프를 차린 삼성은 젊은 선수들이 휴식날 폭포 관광에 나섰다가 큰 변을 당할 뻔한 적이 있다. 당시 2년생 투수 권혁은 수영을 못하는데도 동료들의 즐거운 모습이 부러운 나머지 무모하게 물에 뛰어들었다가 위기 순간에 봉착했다. 당황한 듯 허우적거리다 수심이 2.5m나 되는 물속으로 속절없이 가라앉았다. 다들 발만 동동 구를 때 현장에 동행했던 한 취재기자가 옷도 벗지 않고 뛰어들어 그의 목숨을 구했다.
# 한밤에 비상벨 누가 울렸어?
1996년 LG의 괌 전지훈련. 아직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일이 있다. 심야 비행 후 숙소에 도착한 선수들이 막 잠자리에 든 새벽 3시 무렵.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렸고, 그 소리에 놀란 선수들이 일제히 팬티 바람으로 뛰쳐나와 한바탕 야단법석이었다. 다행이면서도 이상한 점은 어디서도 불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긴급 출동한 현지 소방대는 의아한 표정으로 “화재경보기가 잘못 울렸다” “누군가 일부러 경보기를 누른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으나 범인(?)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 카지노 대박, 대체 얼마?
2001년 롯데의 호주 골드코스트 전지훈련캠프. 휴식날이면 몇몇 선수는 카지노를 찾아 시간을 보냈는데, 그중 한 명인 김민재(현 두산 코치)가 그야말로 ‘왕대박’을 터뜨렸다. 그가 끝내 함구해 정확한 액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동료들은 수천만 원대로 추산했다. 귀국길에 그 많은 현금을 어찌할까 고민했을 정도라고 한다. 고액 외화가 통관에 걸릴 것을 염려한 김민재는 비행기를 타기 전 후배들에게 돈을 나눠주고, 국내에 도착한 뒤 공항에서 다시 거둬들이는 기막힌 작전을 동원했다. 그는 전지훈련지에서 땀 흘리고 외화를 벌어온 셈이었다. 반면 다른 동료들은 대부분 카지노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으며, ‘카지노 후유증’에 시달린 선수도 적지 않았다.
# 6·25전쟁이 해태를 살리다
해태가 하와이 알라와이 구장에서 훈련하던 어느 해. 한 선수가 날린 연습 타구가 구장 밖 인도를 지나가던 현지 할머니를 맞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구장 주변에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인데, 피해자인 할머니는 나이가 많은 데다 화가 많이 난 상태라 합의가 쉽지 않아 보였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보상을 요구하던 할머니는 뒤늦게 가해자(?)가 한국 프로야구팀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갑자기 태도가 돌변했다. 남편이 6·25전쟁 참전 용사라는 인연 덕분이었다.
김도헌 스프츠동아 스포츠1부 기자 dohon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