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만들어서 가장 뿌듯한 게 뭔지 아세요?
빵을 좋아하는 남자 류기명 씨(오른쪽)와 여자 구정화 씨는 인연이 닿아 결혼했고, 작은 케이크 가게를 함께 꾸려 가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여자의 학창시절, 시험을 잘 보면 어머니가 동네 윈도베이커리에서 머핀을 사주었다. 촉촉한 머핀을 베어 물면 행복 그 자체였다. 여자의 어머니는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자는 다짐했다. ‘엄마도 먹을 수 있는 달지 않은 케이크를 만들고 싶어. 나는 꼭 그런 가게를 할 거야.’
빵을 좋아하는 남자 류기명 씨(35)와 여자 구정화 씨(27)는 인연이 닿아 결혼했고, 작은 케이크 가게를 함께 꾸려 가고 있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에 있는 ‘Yam2’(얌이)다.
방송이 끝난 자정 무렵, 구 씨의 휴대전화가 끊임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가게 전화를 착신 전환해 놓은 터였다. ‘어, 이게 뭐지? 무슨 일이지?’ 새벽 1시에 걸려 온 전화의 내용은 이랬다. “지금 영업하나요? 케이크를 사고 싶은데.” 2시에도, 5시에도 벨소리는 이어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평소에는 오전 10시에 가게 문을 열었는데, 방송 이튿날 오전 7시쯤 출근했다.
“채널A PD님이 방송된 다음에는 평소 판매량보다 2, 3배는 더 준비해야 할 거라고 그랬거든요.”(남자)
“그래서 ‘히히, 3배라도 그리 많지 않은 걸’ 하고 둘이 웃었거든요. 평소 판매량을 생각하면.” (여자)
이들은 2011년 10월 백현동 골목 귀퉁이에서 얌이를 열었다. 신축 아파트 단지 근처로 거리에서 행인과 마주치는 일이 드물 정도로 한적한 곳이다.
“가게 열고 전단 한 장 안 돌렸어요. 지나가던 손님이 들렀다가 ‘어머, 맛있네’ 하고 올 줄만 알았거든요.”(남자)
“남편이랑 둘이 길 가는 사람을 지켜보면서 ‘어, (가게에) 안 들어온다’ ‘우리 어떻게 하지’ ‘장사 접어야 하나’ 하고 두려움이 나날이 쌓여 갔어요.”(여자)
하나둘씩 생겨난 단골은 신제품을 기꺼이 구매하고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줬다. 하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을 때쯤 착한 식당 선정이라는 난데없는 선물이 이들에게 주어졌다.
방송이 나간 뒤 급작스레 변화한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의욕적으로 주문을 받다 보니 휴무일로 정해 놓은 1, 3주 월요일에도 쉴 틈이 없다. 주문 전화가 폭주하면서 1월 초에 2월 주문이 끝났다. 이후에라도 주문하고 싶다는 전화가 쏟아지자 1월 25일 3월 주문을 접수하기 시작했지만 당일에 마감됐다.
두 사람이 하루에 만드는 케이크의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도 100명 중 80명은 헛걸음하게 된다. 이들을 만난 평일 오후 6시에도 가게 문에는 ‘준비된 케이크들이 모두 판매되었습니다’라고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인터뷰 중에도 나이 지긋한 신사와 30대 부부, 초등학생 꼬마를 데리고 온 엄마들이 “혹시 남은 케이크 있나 해서요…”라면서 문을 열었다.
주문 받은 케이크만 만들면 그리 힘에 부치지 않는데, 예약 없이 가게로 찾아오는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내기가 미안해서 부부는 매일매일 판매할 케이크를 추가로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전 6시에 출근해 다음 날 새벽 3시에 퇴근하는 생활을 방송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하루 종일 케이크 시트 굽고, 구운 시트에 크림을 바르다 보니까 어질어질하고 몽롱해져요. 너무너무 힘들어서 얼마 전에 케이크 만들다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막 울었어요, 히힛.”(여자)
남자는 “우리는 자랑할 만한 스펙이 없다. 그저 즐거운 일을 선택한 것 뿐”이라고 말했다. 남자는 전문대 전자통신과를 나왔다. 군대 제대하고 옷가게, 컴퓨터 납품업체 등을 전전했다. 수원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할 때 학원 앞에 큰 빵집이 있었다. 하얀 모자에 하얀 옷을 입은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빵을 만드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건강이 나빠져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제과제빵 학원에 등록했고 이후 개인 제과점에서 일을 배우다가 SPC그룹의 프리미엄 디저트 갤러리인 ‘패션5’에 들어갔다.
여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세 때부터 제과제빵 학원을 다녔다. 여자는 자신이 회사 체질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걸 해야지 남이 시키는 일은 못 하기 때문이라고. 동네 빵집에 무작정 찾아가 샌드위치를 만드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다 업계 선배의 강력 추천으로 ‘패션5’에 입성했다.
그렇게 패션5에서 만났다. 처음에 남자에게 여자는 그냥 어린 동생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 활동했던 그룹 ‘이브’를 좋아한다는 공톰점을 우연히 알게 되고 MP3 파일을 교환하면서 친해졌다. 활달한 여자가 다른 남자 동료들과 스스럼없이 손을 잡는 걸 본 남자는 은근히 기분이 나빴다. 어느 날 여자가 다른 남자들과 우르르 몰려 노래방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분당에서 여자의 집이 있는 서울 동대문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그리고 낙산공원에서 다짜고짜 말했다. “결혼하자.”
부부는 최근 여자의 친정인 동대문에서 가게 근처로 집을 옮겼다. 한동안 가게에서 2, 3시간씩 쪽잠을 자면서 일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결정한 일이다. 그래도 케이크를 손에 넣지 못한 손님들은 한마디씩 한다. “왜 이 수량밖에 못 만들어요?” “잠자지 말고 많이 만들어요.” “원래 가격보다 돈 더 줄 테니까 케이크 만들어 줘요.”
냉동 시트를 해동해서 크림 척척 바르고 통조림 과일로 장식 올리면 10분이면 케이크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방송이 나간 뒤 케이크 시트를 납품 받아서 써 보라는 관련 업체의 연락도 받았다.
“반죽을 시작해 시트를 굽고 식히는 데 2시간이 넘게 걸리거든요. 방송에 착한 식당이라고 나왔는데, 남이 대 주는 시트를 쓰면 되겠어요? 냉동 시트 몰래 쓰면서 착한 식당이라고 하면 안 되죠.”(남자)
세상에는 진짜를 가장한 가짜가 참 많다. 이들은 정직하고 좋은 재료로, 제 손으로 직접 만든, 진짜 케이크를 내놓는다. 두 사람이 하루 종일 땀 뻘뻘 흘리면 지름 18cm짜리 2호 케이크를 30개 정도 만들 수 있다. 남자의 어머니가 텃밭에서 재배한 고구마로 만드는 ‘고구마 한입’케이크(4만1000원)는 고구마를 삶아서 껍질을 까고 체에 내리는 작업을 거쳐 완성하는 데만 4, 5시간이 족히 걸린다. 치즈를 듬뿍 넣은 ‘진짜 치즈’케이크(3만8000원)는 굽는 데만 3시간이 소요된다. 초콜릿 케이크인 ‘찐한 퍼지’(3만8000원)에는 프랑스산 최고급 발로나 초콜릿을, 생딸기를 쓰는 ‘딸기 듬뿍(3만7000원)’에는 시장 상황이 허락하는 한 친환경, 무농약, 유기농 인증을 받은 딸기를 사용하려고 한다.
남자와 여자는 성격부터 일하는 스타일까지 완전히 다르다. 남자는 소심하고 여리다. 여자는 하고 싶은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 여자의 직설에 상처 받고 꽁해 있으면, 여자는 방실방실 웃으면서 기분 풀라고 다가온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지만, 그렇게 토닥거리다가 고구마 케이크와 홍차 케이크가 얌이의 대표 케이크로 태어났다. “오빠(남편)는 경력이 나보다 오래됐는데 왜 신제품이 잘 안 나와?” “홍차 케이크 맛이 뭐 이러냐.”
남자는 여자의 손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친구들이 자유롭게 놀러 다닐 때 여자는 온종일 주방에 서서 손에 물기 마를 새가 없다. 주방에선 로션을 바를 수가 없어 건조해진 손이 쉽게 찢어지고 터진다. 남자는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여자를 ‘욱녀’라고 부르지만 눈가에서 안쓰러운 마음을 지워 낼 수가 없다.
“좋은 재료를 써야 맛있고, 금방 만든 케이크를 먹어야 더 맛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손님이 ‘정말 맛있다’라고 하면 또 배시시 웃게 돼요.”(여자)
“케이크를 만들어서 가장 뿌듯한 점이 뭔지 아세요? 행복한 시간을 이 케이크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는 거예요.”(남자)
성남=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