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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순간]소설가 마광수… 한의학 파고들다 무릎을 쳤다 “몸이 머리를 지배한다”

입력 | 2013-02-16 03:00:00


마광수 교수를 만난 건 지난달 하순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였다. 그는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재킷과 모자를 벗지 않았다. 담배를 꺼내 물며 그가 말했다. ”이놈 만큼은 날 떠나지 않았습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어릴 때부터 유난히 몸이 약했다. 어머니는 전쟁이 날 무렵 그를 임신했고, 1·4 후퇴 후 피란을 가다 낳았다. 전쟁통에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어머니에게서 젖이 나올 리 없었다. 배 속에서도, 또 세상에 나와서도 먹질 못했단 얘기다. 그 때문인지 그는 늘 아팠다. 초등학교 때부터 피부병 위장병 폐병 같은 걸 끼고 살았다.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수로 부임한 뒤엔 심각한 위장장애가 그를 괴롭혔다. 진통제를 맞아가며 강단에 섰다. 병원도 그를 돕지 못했다. ‘차라리 내가 내 병을 고쳐야겠다.’ 그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실험의학인 서양의학은 독학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집어든 게 한의서였다. 조헌영(1900∼1988)의 ‘통속한의학 원론’, 이제마(1837∼1899)의 ‘동의수세보원’ 등 한의학 책을 닥치는 대로 구해 읽었다. 한의학에는 놀라운 철학이 담겨 있었다. 우선 몸의 기본이 되는 ‘오장육부’에 뇌가 포함되지 않았다. 머리가 몸을 지배하지 않고 몸이 머리를 지배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육체주의. 그 단어는 단숨에 그의 사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십대 후반 마광수(62·연세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성(性)에 대해 솔직해지기로 했다. ‘마광수표’ 야한 소설과 시는 그렇게 세상에 나올 채비를 마쳤다.



마광수 신드롬

그는 문단에서 촉망받는 시인이었다. 문단 데뷔는 박두진 시인(1916∼1998)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현대문학에 ‘망나니의 노래’ ‘배꼽에’ ‘고구려’ ‘당세풍(當世風)의 결혼’ ‘겁(怯)’ 등 6편을 발표했다. 1977년 박사학위를 밟던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을 때다.

한의학의 맛에 빠지기 시작한 건 홍익대 교수가 된 1979년부터였다. 육체주의의 깨달음은 그 스스로도 충격적이었다. ‘이성이 육체를 지배한다’던 데카르트를 전면 부정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비로소 모든 게 보이기 시작했다. 동양은 과연 성에 대해 엄격했었나? 절대 그렇지 않았다. 서양에선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를 마녀로 몰아 죽였고, 동성애자를 화형에 처했다. 그러나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에서도 성적 취향을 이유로 누굴 처단했다는 기록을 발견하지 못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었다.

한의서를 보면 오장육부 중 가장 중요한 게 신장이라고 했다. 이때 신장은 소변을 배출하는 기능뿐 아니라 성 기능까지를 모두 관장하는 장기다. 그러니 성욕은 모든 욕구에 앞선 것이란 얘기였다. 그는 무릎을 쳤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성욕이구나. 그럼 나는 글에서 그걸 다뤄야겠구나. 한 해, 두 해 한의학을 공부할수록 그의 문학은 뚜렷한 방향성을 갖기 시작했다. 연세대 교수로 부임한 1984년엔 ‘음양 사상과 카타르시스’라는 논문도 썼다.

1989년 그는 세 편의 문제작을 연이어 발표했다. 선두작은 1월에 나온 에세이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였다. 4월에는 시집 ‘가자! 장미 여관으로’를 냈다. 그러고 5월부터 월간지 문학사상에 소설 ‘권태’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손끝에 힘이 넘쳤다. 파장도 컸다. ‘마광수 신드롬’이 일 정도였다. 한편으론 무수한 적(敵)이 양산됐다. 문단의 시선은 차갑게 식었고, 잡지사에도 독자들의 쌍욕이 쏟아졌다. 곤혹스러워하던 편집 담당자들은 그에게 조금만 ‘수위 조절’을 해달라며 애걸복걸했다.

“연재는 원래 문학사상의 아이디어였어요. 난 진즉부터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 잘됐다 싶었고. 한 보름 구상한 뒤에 바로 연재했었죠. 그런데 잡지사도 아마 그렇게 야할 줄은 몰랐을 거야(웃음).”



마광수 죽이기

거칠 게 없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지 그는 관심 없었다. 그리고 믿었다. 동양사상으로부터 얻어낸 깨달음, ‘몸이 머리를 지배한다’는 생각은 갈수록 확고해졌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성에는 무궁무진한 얘깃거리가 있었다. 글은 그에게 ‘진리’를 전파하는 도구가 돼 줬다. 1990년에 낸 ‘광마일기’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와핑’이란 단어를 화두로 던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용기에 환호했고, 다른 편에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공식적으로 그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이듬해 ‘즐거운 사라’가 출간됐다. 그러나 시중에 풀렸던 책은 보름 만에 모두 수거됐다. 간행물윤리위원회가 판매금지 처분을 내린 것이었다. 그는 검사에게 불려가 ‘주의’를 받았다. 분노가 치밀었다. 자신의 소중한 글을, 그가 진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상을 마치 ‘사회악’인 양 치부하는 것에 몸서리치게 화가 났다. 개정판을 내줄 곳을 찾았지만 어느새 출판사들의 반응은 싸늘해져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책을 내겠다며 줄을 서던 출판사들이었는데…. 딱 한 명, 청하출판사의 장석주 대표가 손을 내밀었다. 우여곡절 끝에 1992년 8월 개정판이 출간됐다. 초판이 나온 지 1년 만이었다.

“공권력이든 뭐든 우리가 한 번 대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한 겁니다. 그런다고 정말 잡아갈 줄 알았나, 젠장.”

세상 사람들은 진리라 하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이 진리라 여겼던 것을 위해 선전포고를 한 셈이었다. 세상은 그의 도전에 ‘구속’으로 화답했다. 개정판이 나온 지 두 달 만에 검찰은 강의하던 그를 긴급체포했다.

그는 외로웠다. 그리고 처절했다. 문학인들은 그를 한껏 조롱했다. 3년간의 법정 공방으로 삶은 피폐해졌다. 결국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고, 판결 다음 날 학교는 그를 해고했다. 그는 지금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지 않는다. 잘못하지 않았는데 감옥에 간 것도, 그 일로 생계수단마저 잃어버린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즐거운 사라’는 결국 작가에겐 즐겁지 않은 상처만을 남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광수 죽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마광수 되찾기

국민의 정부는 그를 사면했다. 마광수는 1998년 학교로 다시 돌아왔다. 겨우 몇 년이 흘렀을 뿐이지만 그는 더는 혈기왕성한 싸움닭이 아니었다. 2000년 동료들이 그를 쫓아내려 했을 때도, 이름 있는 출판사들이 원고를 번번이 거부할 때도 그는 그저 말없이 물러났다. 그런 와중에 우울증에 걸려 정신병원을 드나들었고, 세상과 인연을 끊으려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직 학생들과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다. 비록 교양수업만 맡고 있지만 그의 강의실은 늘 학생들로 붐빈다. 대부분은 호기심으로 찾아온 이들이다. 그도 그걸 안다. 그래도 상관없다. 매학기 첫 강의마다 말한다. “자유가 너희를 진리케 하리라.” 젊을수록 다양한 생각과 다양한 경험을 가져보라는 뜻에서다.

글 역시 그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인세를 받아본 게 몇 년 전인지 아득하지만, 그는 글을 씀으로써 살아간다. 지난해 12월 나온 시집 ‘모든 것은 슬프게 간다’의 첫 장에 그는 이렇게 썼다. ‘시는 배설물이다/문학은 문화의 하수도다/현학적인 상수도 문학은 가라.’ 마광수는 이렇듯 저항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를 향한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을 그는 글로 되돌리고 싶다.

1992년 10월 검찰에 끌려가던 그에게 수많은 카메라 세례가 쏟아졌다. 그는 당당히 말했다.

“10년만 지나도 이 사건은 코미디가 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예언은 틀렸다. 21년째가 된 지금도 그는 ‘변태 작가’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변한 게 있다면 2007년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게재했다가 ‘빨간 줄’이 하나 더 그어졌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로 벌금 200만 원에 약식기소 했고, 그는 항소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직 욕심이 있다. 문학가로서의 명예회복. 출판사에 미안해하면서 책을 내는 퇴물 작가가 아닌, 여전히 신선함을 던지는 작가이고 싶다. 그래서 나이 예순둘이 된 2013년, 그는 소설 ‘청춘’을 펴냈다. 육체주의사상에 빠져든 뒤 처음으로 쓴 ‘야하지 않은 글’이다. 그의 ‘마광수 되찾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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