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녕 논설위원
관료 중시는 ‘박정희 스타일’
역대 정부들은 대체로 공무원들과 잘 사귀지 못한 편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교원을 포함한 공무원 정년을 대폭 단축했다. 외환위기 극복 동참이 이유였지만 공무원들로선 불만이 컸다. 노무현 정부는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한다며 1∼3급을 하나의 고위공무원단으로 묶는 바람에 기존의 계급 체계를 무너뜨렸다. 청와대 등에 입성한 386 운동권 출신들은 점령군처럼 굴면서 공무원들에게 불만을 넘어 불안까지 안겨줬다. 이명박 정부는 조직과 인원을 감축했다. 이 대통령은 “회의에서 공무원들이 열심히 메모하는 것을 가까이서 보면 낙서하고 있더라” “정부가 만든 자료는 너무 구태의연하다”는 식으로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았다. 공무원들의 기분이 좋을 리 만무하다.
박정희 시대를 지탱한 주요 인력 풀은 군 출신과 학자, 그리고 관료였다. 박 전 대통령은 특히 전문성과 실무능력이 출중한 관료들을 중용했다. 김충남 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저서 ‘대통령과 국가경영’에서 “박정희는 근대국가가 몇 사람의 우수한 사람들에 의해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능률적인 행정조직과 잘 훈련된 공무원들에 의해 이룩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판단이 아니라 정부조직으로 하여금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실천하게 했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예산 인사 조직에 대한 권한을 각부 장관에게 실질적으로 위임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장관 자리에 관료 출신을 대거 발탁했으니 전문성을 중시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에서 신(新)관료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관료 출신 장관은 잘 벼린 칼과 같다. 일과 조직을 훤하게 꿰고 있으니 목표가 생기면 능숙한 장인처럼 뚝딱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다. 더구나 관료는 정부 시책에 대한 복무(服務)가 체질이어서 말도 잘 듣는 편이다. 가끔 ‘영혼이 없다’는 말을 듣긴 하지만. 공약 실천을 중시하는 박 당선인이 이런 장점 때문에 관료 출신을 대거 발탁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을 앞세워 관료사회의 자발적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긍정과 부정 측면 함께 살펴야
그러나 관료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편이라 정책 결정과 집행에서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합리성 민주성 투명성이 부족할 수 있다. 관료 출신 장관이 ‘친정’을 이끌다 보면 아무래도 부처이기주의에 매몰될 가능성도 크다. 관료 출신의 중용은 관료사회의 정치화를 부추기고, 정권 창출에 기여한 공신(功臣)들의 입지를 좁혀 정권 내부의 갈등을 촉발시킬 수도 있다. 관료 출신 장관은 쓰는 사람의 손도 벨 수 있는 양날의 칼인 셈이다. 요긴하게 쓰되 과용은 삼가야 한다. 중용(中庸)이라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