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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중산층의 기준

입력 | 2013-02-16 03:00:00


요리, 좋아하세요? 잘하는 요리는 뭐가 있어요? 오로지 ‘나’를 대접하기 위해 요리해본 적 있으세요? 그때 내가 좋아하는 요리는 어떤 건가요? 혹은 맘에 맞는 친구들을 불러 요리 두세 접시를 직접 만들어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걸 즐기시나요? 프랑스 중산층의 조건입니다.

악기, 다루실 줄 아는 것이 있나요? 우울하고 적적할 때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악기 하나 배우고 싶지 않으세요? 얼마 전 내 친구는 하모니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줄곧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더니 이제는 ‘봄처녀’에서 ‘그 집 앞’까지 제법입니다. 그 친구 말이 하모니카를 배운 것이 인생 중반에 가장 잘한 일이라네요. 아세요?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 혹은 운동 하나, 그것도 프랑스 중산층의 조건입니다.

그저 보는 것 말고 직접 즐기는 운동이 어떤 건가요? 저는 배드민턴을 좋아하는데, 배드민턴 좋아하세요? 휴일이 되면 공 하나 들고 운동장에 나가 기분 좋게 놀 수 있나요? 좋아하시는 신문은 있나요? 오랫동안 잘 먹고 잘살았으면서, 세금 제대로 내지 않고, 자식들 군대 보내지 않고, 가족밖에 챙긴 것이 없는 사람이 고위공직자가 되겠다고 청문회를 할 때 공분을 느끼시나요? 공분을 느끼며 부정에 저항하는 것, 그것은 프랑스뿐 아니라 영국, 미국 중산층의 조건이기도 하답니다.

중산층이 두꺼워야 건강한 사회라고 하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말일 수도 있고, 누구나 아는 말이어서 하나 마나 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이 강조되는 건 중산층이 그만큼 얇아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회가 위태롭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산층의 기준은 어떤 건지 아세요? 월급은 500만 원 이상, 자동차는 2000cc 이상, 아파트는 부채 없이 30평 이상, 예금 잔액 1억 원 이상, 해외여행 연 1회 이상.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때 우리가 쓰는 중산층의 기준이라는데, 해당 사항 있으세요? 중산층의 길은 멀기만 하구나 하고 한숨짓다 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나요? 중산층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하나의 기준을 나열해 놓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의 기준, ‘돈’밖에 없는 거지요.

중산층이란 것이 사회적 개념인 동시에 경제적 개념이니 돈이 중요한 변수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돈뿐인 기준은 우리가 얼마나 가난하고 각박한지를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 같아 민망하기만 합니다. 다른 나라의 기준과 비교해 보면 말입니다.

프랑스 중산층 기준에서 또 눈에 띄는 것은 ‘남의 아이를 내 아이처럼 꾸짖을 수 있을 것’이란 항목입니다. 특이하지 않나요? 그리고 향수가 있지 않나요? 우리 어렸을 적엔 우리가 잘못하면 동네 어르신들이 마치 우리 집 어른인 양 야단치셨습니다. 그때는 어른들 모두가 교육을 담당하는 좋은 선생님들이셨는데요. 그런데 이제는 식당을 휘젓고 다니는 아이가 있어도 직접은 야단치지 않지요? 그 부모와 부딪치기가 싫은 거지요. ‘내 아이도 아닌데 왜?’ 하는 사이에 우리는 아예 아이들을 무서워하기까지 되었습니다. 우리 중학생들이 무서워서 북한에서도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말이 돌 정도로.

그리고 프랑스 중산층 기준의 마지막, 바로 외국어 하나입니다. 취업하기 위해 억지로 배우는 하인의 언어 말고, 다른 나라의 삶과 문화에 관심이 있어서 배우게 되는 외국어 말입니다.

그나저나 국민행복시대를 선언한 우리 대통령은 어떤 기준의 중산층을 그리고 계실까요?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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