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며칠 만에 딸을 외톨이에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워낙에 약아빠진 아이라고 했다. 물론 그 아이도 마음에 쌓인 게 많으니 분풀이를 하려고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못살게 구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남자는 아내와 마주 앉아 한숨을 지었다. 섣부르게 학원에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없었다. 요즘 아이들의 왕따는 고도로 지능화되어 어른들이 개입해도 손쓸 방법이 없을 때가 많다. 증거도 없을뿐더러 ‘그냥 장난’이라고 우기면 그만이다. 당하는 녀석만 바보가 되기 일쑤다.
남자는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런 바보를 왜 낳아서 이 고생을 하는 것인지. 저런 성격으로 이 험한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밤새 뒤척이다가 주말 아침이 희붐하게 밝아올 무렵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 또한 어린 시절에 행복하지 못했다는 기억.
어떻게 한동안 잊고 살았을까.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친구의 생일. 혼자만 초대를 받지 못한 것이었다. 가난하고 지저분하다고.
눈물이 찔끔 났다. 옛 기억이 생각의 각도를 갑자기 바꿔 놓았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아빠에 이어 딸까지 이런 아픔을 당해야만 하는 것인지. 딸이 불쌍했고 미안했다.
남자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확실히 세상은 돌고 도는 곳이다. 누구에게나 ‘좋을 때’가 따로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게 언제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러니까 지금 외롭고 괴롭다고 해서 좌절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남자는 딸에게 이렇게 말해주기로 했다. 주눅 들지 말고 당당하게 맞서라고. 네 앞에는 쇠털같이 많은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한상복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