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그 열여덟해 1979.11.21∼1997.12.10
1977년 ‘충북 새마음 갖기 궐기대회’를 마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환송 인파에 웃으며 답례하고 있다. 동아일보DB
1979년 10·26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퍼스트레이디 박 당선인에게 ‘아는 남자’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박 당선인은 이들과 매주 수요일, 토요일 오후 청와대 테니스장에서 2시간가량 ‘테니스 교제’를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 당선인의 테니스 실력은 ‘같이 경기를 할 만하다’는 정도였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기술은 다음에 반드시 고쳐서 향상시켜 나올 정도였다. 테니스를 치고 난 뒤에는 손수 떡을 준비하기도 했고 기자들이 요청하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고 한다. 레퍼토리는 주로 동요나 ‘새마을노래’ 같은 것이었다고 당시 언론인들은 기억한다.
그 며칠 전 미국 칼럼니스트 윌리엄 사파이어가 뉴욕타임스에 ‘코리아 게이트’와 인권문제를 들어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칼럼을 썼다. 그러자 유 전 기자는 ‘사파이어 선생에게’라는 제목으로 미국 정부의 ‘인권에 대한 이중 잣대’를 들어 반박하는 작은 기사를 썼는데 박 당선인이 그걸 읽었던 것이다.
김진기 전 KBS 보도본부 해설위원은 “우리들이 많이 괴롭혔다”며 박 당선인의 ‘수줍은 여성’으로서의 면모를 떠올렸다. 당시 충효사상을 고양시키기 위한 ‘새마음 운동’을 주도했던 박 당선인은 전국을 돌며 ‘새마음 갖기 궐기대회’를 열었다. 대회 장소로 이동할 때 박 당선인과 출입기자들은 같은 버스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김 전 위원이 차 안에서 “충효사상을 강조하면서 혼기가 된 자녀로서 결혼하지 않으면 불효 아니겠느냐”며 “얼른 혼인을 해서 외로운 아버지에게 손주를 안겨드리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냐”고 박 당선인을 놀렸다. 같이 탔던 부속실 비서관들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만하라’는 표시를 했다. 박 당선인은 얼굴이 빨개졌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없잖아요. 아버지가 절 보고 계시는데 도와드릴 때까지는 도와드려야지요”라고 했다는 것.
박 당선인은 육영수 여사 생전에 ‘작고 예쁜 집을 꾸미며 커피를 끓여 마시는’ 소박한 삶을 꿈꾼 적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도 그런 꿈을 퍼스트레이디 역할 때문에 미뤄둬야 하는 딸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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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