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 큰기와집 한영용 대표 ’자녀와 함께 만드는 전통요리’
《“아빠, 이렇게 썰면 되는 거예요?”
“응. 우리 주성이 잘하네. 칼질 할 때는 항상 정신을 집중하고 조심해야 한다.”
15일 저녁, 서울 삼청동 ‘큰기와집’에 한영용 대표(44)와 그의 다섯 아이들이 모두 모였다. 맏이 은영이(13·여·서울 청운초6)부터 주성(12·서울 청운초5), 우선(11·여·서울 청운초4), 원선(9·여·서울 청운초2), 수창이(6)까지.
주성이와 우선이는 봄나물을 썰고, 은영과 원선은 으깬 두부에 재료를 넣어 반죽하고, 막내 수창은 아빠의 도움을 받아 삶은 계란을 체에 내렸다. 여섯 명이 만드니 금세 경단이 만들어졌다.》
“요즘 아이들은 봄을 느낄 수도 없잖아요. 일부러 봄내음 물씬 풍기는 재료들로 준비했어요. 담백한 요리를 자주 해줘야 아이들 미각이 살아있게 돼요. 매일 달고 자극적인 과자 같은 간식을 먹으면 미각도 사라지고, 건강도 나빠지죠.”
자녀와 요리하며 스킨십 늘려라
“아내와 가족계획을 세우면서 아이를 많이 낳자고 했어요. 행복이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해보면 결국 가족 아닌가요. 아이들이 대가족 속에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기쁨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요즘 부모들은 요리하다가 아이들이 다칠까봐 아예 안 시키기도 해요. 우리는 아이들이 다섯 명이나 되다 보니 일일이 챙겨줄 수가 없어서 가르쳤어요. 밥하고 라면 끓이고 계란프라이를 직접 하다 보면 불에 대한 무서움도 사라지고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죠. 근거 없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한 대표는 자주는 못하지만 가끔 아이들과 요리하는 시간을 가진다. 요리하면서 자연스럽게 본인이 어린 시절에는 먹을 것이 얼마나 귀했는지, 잘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자녀들에게 들려준다.
그는 홀어머니 슬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고생하는 어머니를 도와 중학교 때부터 식당 일을 거들며 음식을 만들었다. 위암에 걸린 어머니 치료비를 벌려고 스물 남짓한 나이에 다니던 한의대를 그만두고 포장마차를 시작해 돈을 벌었다.
군대 제대 후에는 신라호텔 한식부에서 조리사 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경희대 조리학과에 입학해 주경야독을 했다. 열심히 살아온 아빠의 인생을 자랑스러워하는 장녀 은영이는 “나도 아빠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가 추천한 첫 번째 요리는 동그랑땡. 갈아 놓은 고기에 여러 가지 야채를 다진 뒤 넣어 반죽하고 계란을 입혀 구우면 된다. 반죽할 때 아버지와 자녀가 함께 손을 맞대고 주무를 수도 있고, 모양을 빚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보다 간편한 요리로는 김치 오므라이스가 있다. 김치를 송송 썰어서 볶은 뒤 계란프라이를 만들어 얹으면 된다. 이도 저도 힘들고 요리에 자신이 없으면 집에 있는 반찬들을 활용해 밥에 넣고 주먹밥을 만들어도 좋다. 중요한 건 요리 자체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 요리를 하는 그 시간이다.
“외식하는 것보다 아빠와 함께 만들어서 먹으면 아이들은 더욱 행복감을 느껴요. 한국의 아버지들이 얼마나 힘든지는 다들 잘 알죠. 사실 아이들과 자주 보지 못해 서먹한 이유도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잖아요.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요리 시간을 거창하게 생각하면 피곤할 수밖에 없어요. 짧은 시간을 들여 스트레스 받지 않고 아이와 즐겁게,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요리가 좋죠.”
한 대표는 가끔 아이들에게 용돈을 줄 테니 아빠에게 바라는 걸 편지로 쓰라고 한다. 본인이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들, 혹시나 서운하게 느꼈던 적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써달라고 주문한다.
얼마 전 은영이는 친구 여럿을 모아 식당에서 거창하게 하는 생일파티가 부러웠다고 편지를 써왔다. 한 대표는 딸의 친한 친구들을 모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음식을 사주는 대신, 스케이트장에 데려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대가족의 행복, 한국의 멋, 두루 아는 사람으로 커 갑니다▼
공부보다 기본 예절이 우선
한 대표의 아이들은 영어, 수학 학원 대신에 경복궁 근처에 있는 명상 학원에 다닌다. 이곳에서 명상과 함께 다도, 바둑 등을 배운다.
자상한 아빠로 손꼽히는 그가 아이들에게 가장 엄격할 때는 기본 예절을 지키지 않을 때다. 어른들에게 공손히 인사하지 않거나 주변 정리를 잘하지 않을 때는 무섭게 혼을 내는 편이다.
그는 “‘1등 하면 아빠가 스마트폰 사줄게’라고 하거나 ‘네가 학교에서 몇 등이니?’라고 묻는 부모가 많은데 이런 교육을 시키면 아이들은 친구를 경쟁상대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가장 큰 경쟁상대는 친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라고 강조한다. 자신을 제압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가져야 할 첫 번째 자세가 기본 예절이다.
“공부는 잘하는데 자기밖에 모르는 애들로 키우고 싶지 않아요. 실제 그런 친구들이 졸업 후 성공하는 경우를 거의 못 봤어요. 공부는 본인들이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 거고요.”
한 대표는 여러 번 지적했는데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고치지 못할 때는 무섭게 매도 든다. 그 대신 체벌을 할 때는 꼭 맞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준다. 때리고 나서는 항상 안아주면서 “아팠지. 아빠도 할머니께 잘못했을 때는 호되게 맞으면서 잘못을 깨닫고 배웠어. 아빠가 미워서 때린 게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지?”라고 말한다.
한 대표는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한다.
“이 사회의 일원으로 남들에게 존경은 못 받을망정 절대로 멸시나 천대받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요. 더 욕심을 부리면 향기로운 사람으로 컸으면 하죠. 어디를 가더라도 ‘저 친구가 있어서 행복해’라는 얘기를 들으면 바랄 게 없겠죠. 높은 자리, 부귀영화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으면 해요.”
다행히 아이들도 아빠의 교육 철학을 잘 이해해주고 있다. 원선이는 “아빠가 공부하라는 말보다 평소 기본생활을 잘하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며 “학교 끝나고 영어, 수학 학원 다니는 것보다 언니, 오빠랑 같이 다도 배우고 명상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한국의 멋’을 아는 아이들로 키워라
지난해 12월 한 대표의 생일. 그는 다섯 남매가 정성껏 준비한 특별한 생일상을 선물로 받았다. 은영이가 가야금을 켜고, 주성은 붓글씨를 쓰고, 우선이와 원선이는 다도를 하면서 아버지를 위한 축하 공연을 가진 것이다. 마지막은 막내 수창이까지 다섯 명이 모여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절을 했다.
“옛날 선비들은 우리 아이들이 저에게 해줬던 그런 생일 파티를 많이 열었어요. 생일날이 단순히 맛있는 것 먹고 마시는 날은 아니잖아요. 부모가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게 얼마나 힘들고 고귀한 일인지 설명해주는 자리가 생일날이 되었으면 해요.”
한 대표는 아이들에게 전통적인 것, 한국적인 것을 매우 강조한다. 평소 전통음악을 많이 들려주고 역사책도 자주 읽어줬다. 어렸을 때부터 다섯 남매에게 다도를 가르쳐서 모두 차(茶)를 좋아한다.
“앞으로 한국이 지금보다 선진국이 되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배우러 오고 한국 역사, 문화 등을 물어볼 텐데 한국 사람들이 한국을 너무 모르는 것 같아요. 귀찮다고 명절 날 한복도 안 입잖아요. 서양 가곡은 잘 부르는데 전통 노래는 한 곡도 못 부르는 아이도 많아요. 우리 아이들이 ‘한국의 멋’을 잘 알고 즐기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어요.”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