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청계천 등을 지나다 한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낯선 풍경. 외국 여행 중에나 만날법한 인력거가 서울 시내에 등장한 것이다. 지난해 7월부터 북촌과 서촌, 인사동, 광화문 등 일대에서 운행을 시작한 ‘아띠 인력거’는 다양한 투어 코스를 개발해 관광객 및 일반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아띠 인력거를 운영하고 있는 이는 28세의 청년 이인재씨. 2010년 여름, 미국인 친구와 함께 시범적으로 운행한 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인력거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는 90년생부터 85년생까지 또래 직원 5명이 모여 인력거를 타고 있다.
안국역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자마자 그는 “우선 인력거를 타봐야 한다”며 기자에게 인력거 체험(?)을 권했다. 뒷자리에 편히 앉아 열심히 페달을 돌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것이 조금 미안해지려던 찰나, “좋아서 하는 일이니 절대 안쓰럽게 보지 말라”는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기자는 잠시 들었던 미안한 마음은 버리고 북촌의 풍경을 즐기는 여유를 누렸다.
대표적인 화이트컬러 직종인 증권사 박차고 나와
이인재씨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재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미국 웨슬리안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이름난 증권사에서 1년여간 근무한 이력도 있다.
대표적인 화이트컬러 직종인 증권사를 박차고 나와 인력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을 하면서 한 번도 보람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내 사업’에 대한 욕심도 좀 있었고요.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인력거가 떠올랐죠.”
그가 인력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시절부터. 이인재씨는 자신의 휴대폰 사진첩까지 보여주며 당시의 풀 스토리를 들려줬다.
“대학교 재학 중 좋아하던 여자 친구의 동생이 학교에 놀러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점수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그녀의 동생은 몸이 불편해 휠체어를 타야했는데 제가 자전거에 휠체어를 묶어 돌아다니며 학교를 구경시켜줬어요.”
“보스턴에서 인력거가 유행이었는데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특히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는 인력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인력거의 매력을 느낀 그는 한국에서 사업을 구상할 때 가장 먼저 인력거를 떠올렸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는 중국에서 유럽, 미국 수출용으로 제작된 고급 인력거를 6대 구입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매일 운행했지만 겨울이 되면서 주말에만 운행하고 있다. 인력거 한 대당 성인 3명까지 탈 수 있고 요금은 40분에 1인당 1만 5천원(2013년 3월부터 2만원으로 조정).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기 위해 탈 수도 있는데, 요금은 탑승객이 알아서 내는 시스템이다.
두산 박용만 회장, 배우 박상원 등이 탑승하기도
특히 북촌, 서촌은 직접 가이드까지 해주는 40분 투어 코스를 개발해 관광 상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특히 여성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그의 인력거는 소문이 나면서 가수 노영심, 두산 박용만 회장, 엄홍길 대장, 배우 박상원씨 등이 탑승하기도 했다.
이인재씨는 앞으로 꾸준히 인력거 사업을 늘려갈 계획이다.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인력거를 탈 수 있게 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지금은 시작 단계지만 인력거 사업이 안정된다면 자동차로 가득한 도시의 풍경이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조금 더 사람 냄새나고 따뜻한 모습이 될 것 같아요.”
글·박해나<우먼 동아일보 http://thewoman.donga.com 에디터 phn0905@gmail.com>
사진·홍중식<동아일보 출판사진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