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국제부 기자
하지만 핵무기를 갖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인민들이 더이상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한 김정은의 말이 진심이라면 그는 핵무기를 만든 뒤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물론 김정은에겐 체제 유지가 제일 중요할 터. 인민생활 개선을 두 번째 과업 정도로만 여겨도 고맙겠다.
만약 내가 인민의 허리띠를 풀려는 진심을 갖고 있는 김정은이라면 핵무기를 가진 뒤 제일 먼저 과감한 군축을 제안할 것이다. 전쟁 억제력은 가졌으되 남침 의사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120만 명인 북한군을 60만 명 선으로 확 줄일 테니 한미연합군도 확 줄이고 평화협정을 맺자고. 이건 정말 대단한 파격이다. 절약하는 국방비만 어마어마하니 미국이나 한국이 모르는 척하기도 어렵다.
개인적으론 이왕 핵무기 보유 결심이 확고하다면 빨리 끝냈으면 했다. 국제사회의 제재로 피해 볼 인민도 생각하고, 제재하느라 피곤한 남쪽도 좀 생각해서 말이다. 한데 유감스럽게 능력이 안 되나 보다. 3차 핵실험은 이왕 하는 김에 한꺼번에 몇 차례의 실험을 동시에 할 줄 알았는데, 장약량만 늘리면 위력을 얼마든지 높이는 단순 실험만 했다. 진도가 2차와 별 차이 없다. 핵 놀음 언제까지 봐줘야 하나 생각하니 벌써 피곤하다.
끝으로 김정은도 이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지금 북한 처지에 핵무기를 만들고도 군축을 안 하면 그건 핵을 부둥켜안고 망한 선배님들 따라 가는 길이라는 것을. 핵무기만으론 절대 체제를 지킬 수 없다는 진리를 말이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