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인균 이화여대 약대 석좌교수·정신과 의사
필자는 피해자들 중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환자들을 수년간 추적해 회복에 관여하는 인자를 찾는 연구를 했다. 뇌영상 연구 결과 사건 후 초기에 뇌 앞쪽부터 양옆 넓은 부분을 차지하는 ‘배외측전전두엽(背外側前前頭葉·dorsolateral prefrontal cortex)’ 기능이 활성화될수록 회복이 빨랐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배외측전전두엽’이란 하등 동물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전(前) 유인원에서부터야 존재하고, 사람에게서 특히 커져 있는, 다시 말해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뇌 부위다.
맡고 있는 기능은 ‘인지적 재평가’. 인지적 재평가란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 그 의미와 목적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기능을 말한다. 즉, 대구지하철 참사를 겪고 난 뒤 왜 이런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내 인생에 일어났을까 묻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고 후 ‘배외측전전두엽’이 활성화될수록 회복이 빨랐다는 것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정신적 충격과 상처로부터의 회복을 앞당겼다는 뜻이다.
믿지 않으실 분들도 있겠지만, 일생 내내 한 번도 우울한 적이 없었다는 분들을 드물게 만나게 된다. 긍정적이고 유쾌한 성품을 가진 그들은 모임의 핵심이며 다들 좋아하는 사람이어서 모임에 꼭 필요한 분들이다. 그러나 이분들에게도 부족한 것이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배려할 수 있는 능력, 남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으로 다시 말해 깊이 있는 교감 능력이 부족하다. 소극적 의미에서 우울증과 고통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숙할 기회를 준다.
고통스러운 사건들, 깊은 우울증을 극복한 환자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이나 생각을 쉽게 단죄하거나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남의 고통에 대해 쉽게 말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고통과 우울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끔찍한 고통을 겪지 못한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면서 “평소에 잘난 체하고 오만하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쉽게 던진다. 나는 미국 9·11테러 때 나온 몇몇 사람의 발언을 듣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그 많은 억울하고 무고한 죽음 앞에 “미국이 오만해서 이런 일을 당한 것”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 피해자들이 당했을 공포, 가족들의 슬픔에 대한 아픔과 공감은 전혀 없는 말이었다. 그런 말들은 고통을 겪은 당사자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절대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어야 한다.
우울을 극복한 환자들은, 조금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고통과 우울 불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나누게 되었고 그것이 우울을 극복하는 핵심적인 요소였다는 말을 해준다. 우울과 고통스러운 사건을 일부러 인생에 불러들일 필요는 없겠지만, 나의 초대에 상관없이 이미 찾아온 우울과 고통은 어쨌든 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준다. 우울과 고통이 다가오기 전에는 삶의 온갖 재미를 추구하고 성공과 명예를 좇으며 사는 바쁜 삶이어서 다른 사람과 뭔가를 나눌 시간과 자원이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오해는 금물이다. 중증 우울증 환자들에게 “남을 위해 살라”고 말하는 것은 앞에 언급한 것처럼 공감의 태도가 전무한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중증 상태의 우울증 환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먼저 돌봄을 받아 회복되어야 하며 회복된 뒤에야 비로소 삶과 사랑의 나눔이 효과를 낼 수 있다.
사랑과 나눔이 우울의 치유책이라는 많은 우울증 환자들의 증언은 우리 사회 전체에 어떤 뜻을 가질까.
최근 수년 동안 우리 연구팀에서는 탈북 동포들을 3000명가량 인터뷰했다. 북한이 기근, 자연 재해 등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극심하게 겪고 있으며 인권 탄압도 전 세계 국가 중 제일 심할 정도로 극심하다는 것은 내가 만난 탈북자들뿐 아니라 객관적인 많은 매체가 이미 전하는 바이다. 대조적으로 남한은 절대 빈곤은 넘겼다.
그런데 이렇게 부유한 남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북한에 대한 태도는 일반적으로 어떠한가.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인권운동가를 포함한 소수 사람들이 아무리 외쳐도 기본적으로는 ‘무관심’하다.
얼마 전 이화여대에서 소설가 벤 오크리의 강연이 있었다. 그는 나이지리아 태생으로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고국으로 돌아갔고 내전을 겪었다. 그는 “인간 삶의 정수(精髓)는 고통을 극복하고, 견디고, 변화시키고, 창조하고, 사랑하여 마침내 고통보다 더 (내면이) 커질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전쟁이라는 끔찍한 고통을 직접 겪은 사람이기에, 그 후유증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사람이기에 이분의 고통에 대한 언급이 더 진실하게 다가왔다.
지금 마음속 고통을 받고 있는 분들께 약속드리고 싶다. 고통과 깊은 우울이 지나갔을 때 그 자리에 역설적으로 삶의 의미와 성숙이 남을 것이다. 조금은 이기적이고, 많이 우울한, 대한민국이 이를 극복하고 성숙한 모습으로 설 때를 보고 싶다.
류인균 이화여대 약대 석좌교수·정신과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