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18일 월요일 맑음. 어쩌면 괜찮을지도 몰라. 트랙 #46 Bill Fay ‘The Healing Day’(2012년)
41년 만의 신작 ‘라이프 이스 피플’을 녹음 중인 영국 가수 빌 페이.
1월 1일에 뭘 했더라. 어이쿠, 벌써 가물가물하네. 그래. 새벽같이 일어나 2013년 첫 해가 떠오르는 걸 보겠다는 다짐부터 와장창 깨졌었지. 새벽 아닌 오전 일찍 일어나 눈이 쌓인 거리를 무작정 걸었다.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20분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한강변의 가톨릭 성지가 나왔다. 성당에 들어서자 중창단이 부르는 아름다운 다성 음악이 귀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햇살 가득한 야외에서 오래 감았던 눈을 반짝 뜰 때처럼 하얗고 조그마한 폭발 같은 충격이 귓전에 부서졌다.
지난주 함께 점심식사를 한 J 선배는 “배우가 연기를 안(못) 하면 배우가 아니고 가수가 노래를 안(못) 하면 가수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40년 넘게 신작을 내지 않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빌 페이는 가수다. 그는 1960년대 말 데뷔와 함께 시적인 가사와 관조적인 목소리, 빼어난 악곡으로 밥 딜런에 대한 영국의 화답으로 지목됐다. 1971년 2집을 내놓은 뒤 저조한 음반 판매량으로 음반사와 재계약에 실패한 뒤 음악계에서 그의 이름 석 자는 사라졌다.
페이의 신작에 수록된 ‘더 힐링 데이’가 입안에서 맴돌았다. 1월 1일에 들었던 그 노래. ‘괜찮을 거야/치유의 날에’를 반복하는 페이의 목소리. 영어를 모르면 느끼기 힘들다는 딜런이나 브루스 스프링스틴 음악의 감동보다 살갑게 다가왔다.
어쩌면 괜찮을지도 몰라. 세상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뛰어난 가수나 배우, 기자가 아니더라도. 괜찮을 거야. 치유의 날에.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