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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건축] 최악 1위 서울시 신청사

입력 | 2013-02-20 03:00:00

시설은 화려한데… 건축과정이 황당




고전적인 형태의 옛 서울시청 뒤쪽에 자리 잡은 서울시 신청사.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서울지하철 시청역에 내려 4번 출구로 올라가면 서울시청 시민청 공간이 나온다. 갤러리도 있고, 시민발언대도 있고, 공정무역 가게도 있다. 책방을 지나면 만나는 군기시(軍器寺) 유적 전시실. 신청사 공사 중에 발견한 조선시대 무기 제도 기관인 군기시의 유구를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해 놓은 공간이다. 잠시나마 수백 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

둥그런 계단을 타고 시청 1층 로비에 들어서면 거대한 녹색 정원이 벽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둥그렇게 돌아가는 커튼월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에 반짝이는 녹색의 물결, 그리고 인공 구름 같은 설치 작품은 시공을 초월한 짜릿한 느낌을 준다. 녹색의 물결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면 천장을 가로지르는 유선형의 물체가 떠 있는 것이 보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물체 안으로 들어서니 시원하게 열린 복층 공간에 빛이 가득하다. 하늘광장이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받아 창 쪽에 앉으면 한눈에 들어오는 푸른 서울광장…. 플라자호텔이 부럽지 않다.

서울시 신청사는 동아일보와 ‘SPACE’가 건축 전문가 100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본보 2월 5일자 A1, 8면 참조)에서 최악의 한국 현대건축물 1위로 선정됐지만 내게 서울시 신청사는 ‘최악의 건물’이 아니라 ‘최악의 과정’이다. 서울시 신청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청사가 만들어진 과정에 있다. 신청사의 콘셉트 설계자인 건축가 유걸은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서울시청 같은 주요 공공건축물은 편하게, 검증된 것만으로 짓는 건물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고 많은 고민을 담아 지어야 하는데, 턴키(turnkey) 방식으로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담아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턴키는 열쇠만 열고 들어가서 바로 살 수 있도록 시공업자가 건물 설계에서 인테리어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해 건축주에게 넘기는 방식을 말한다. 해외 플랜트 건설이나 대규모 공공 공사와 같이 시공업체가 책임지고 예산과 일정을 맞춰야 하는 프로젝트에 적합한 방식이다.

녹색식물 뒤덮인 수직정원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이 수평의 광장이라면 신청사 내부는 녹색이 벽을 따라 올라간 수직 광장이다. 로비에 들어서면 녹색 식물로 뒤덮인 수직 정원이 사람들을 맞는다. 건축 전문가들은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서 한국 건축계의 부실함을 드러냈다”며 최악의 건축물 1위로 평가했지만 시민 친화적인 내부 설계 덕분인지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문제는 이러한 수주 및 공사 방식이 수백 년의 역사가 쌓여 있고, 다양한 시민의 욕구를 수용해야 할 서울시청과 같은 프로젝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성을 목적으로 한 턴키 방식이 서울시 신청사 건립에서는 오히려 비용과 일정을 낭비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2009년 완공 예정이던 건물은 3년이 지난 2012년에야 입주할 수 있었고, 처음 공사비 2000억 원은 3000억 원으로 불어났다.

서울시는 2005년 1차 아이디어 공모전과 2차 턴키 입찰 방식의 두 단계로 나눠 공모했다. 1차에서 선정된 설계사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수행할 대형 건설사와 팀을 이루어 2차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하지만 2단계 공모를 통해 최종적으로 당선된 21층짜리 ‘항아리’ 안은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 인접한 덕수궁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결됐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당선된 안을 수정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회오리 모양으로 감아 올라가는 ‘태극 문양’ 형태의 건물이 나오는가 하면, 2007년 3월 심의를 통과한 안은 원안과 전혀 다른 ‘성냥갑’ 형태의 건물이었다. 이렇게 안을 매번 뒤집을 바에는 공모전을 왜 했는지 모르겠다. 발주처는 공모전을 통해 설계안을 뽑는 취지가 무색하게 설계회사를 뽑는 것처럼 행동하고, 설계회사 역시 설계안보다는 로비에 투자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황당한 것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확정된 최종안에 대해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여론이 일자 유명한 국내 건축가를 따로 모셔서 초청공모전을 개최하고, 건축가 유걸의 수평적인 건물을 최종 확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1차와 2차 공모에서 당선된 설계사와 건설사가 따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별도의 초청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가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제도적 도움을 받기가 힘들었다. 적법하게 진행된 최초 공모전 결과를 발주처 스스로 무시함으로써 모든 참여자를 희생자로 만들어 버리고, 시간도 날리고, 돈도 허비했으며, 제일 중요한 건물마저 망친 것이다.

아직도 정부와 수많은 지방자체단체는 행정편의라는 이유만으로 턴키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 신청사의 문제점을 거울삼아 앞으로는 각 프로젝트의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요구를 감안한 적절한 방식의 공모제를 고민해야 한다. 또 건물의 위치와 필요한 프로그램을 강요하기보다는, 건축가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독려하는 여유가 필요하다.

신청사를 돌아보고 다시 지하 공간으로 내려오니 옛 시청사의 태평홀을 지하 2층에 복원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태평홀에서는 결혼식이 진행 중이었다. 새로운 커플처럼, 시청사 역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할 수 없듯이 시청사도 시간을 두고 내면을 알아가야 한다. 시청사와 시민 간의 결혼 생활이 막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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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 홍익대 건축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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