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 中企에 문 열고 대기업 경쟁시켜 과점 막아야”
양승택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자와 벤처 성공신화가 나오려면 기초과학과 응용기술 연구자들에게 단기적인 성과를 독촉하지 말고 오랫동안 ‘한 우물’을 팔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창조(創造)는 말 그대로 ‘처음 만드는 것’이다. 창조경제란 우리가 세계 최초로 만든 제품이나 혁신적인 사업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선진국을 쫓아가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스스로 갈 길을 찾아야 한다.”
“사실 기술과 과학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술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상품화하기 위한 것으로 응용이 중요하다. 과학은 응용을 고민하지 않고 궁금증을 파헤치는 것이다. 기초과학도 기술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유전자 연구 분야가 컴퓨터가 없었으면 가능했겠는가. 우리는 이미 40년 전부터 과학기술 담당 부처를 만들어 두 분야의 융합을 시도해왔고 효과도 있었다. 정보통신도 기술의 한 분야다. 정보통신과 과학기술 분야를 합친 것은 옳은 방향이다. 정보통신이 과학을 지원하면 큰 시너지를 낼 것으로 생각한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적임자라고 보는가.(17일 김종훈 후보자의 내정 소식이 전해진 뒤 추가 질문해 답변을 받음)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자리는 정보통신 마인드가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적임자를 찾았다고 본다. 김 후보자는 광통신시스템을 만들어 성공시킨 정보통신 전문가다. 또 그가 맡았던 벨연구소는 노벨상의 산실로 불릴 정도로 기초과학이 강한 연구소다. 김 후보자는 두 분야를 조화시키는 데 대한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다.”
양 회장은 1968년부터 1979년까지 벨연구소에 근무했지만 김 후보자와 근무 기간이 겹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에는 왜 잡스 같은 창조적인 인물이 나오지 않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잡스나 빌 게이츠 모두 실패자였다. 대학에서 중퇴했거나 사업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다.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나중에 컴백에 성공해 아이폰을 만들었다. 그에게는 재기의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번 실패하면 재기가 불가능한 구조다. 재창업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사기꾼으로 몰리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가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려면 연구개발(R&D)이나 벤처 창업 등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잘못되더라도 회생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10여 년 전 벤처 열기가 끝난 후 생존한 벤처기업이 별로 없다. 제대로 된 정보통신 벤처기업이 나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사실 벤처기업은 1000개 중에 10개만 성공하는 것이다. 성공한 벤처가 많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다시 벤처기업 창업 열기를 살리려면 벤처가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실제로 성공 사례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벤처 성공사례가 나오면 너도나도 뛰어들면서 ‘벤처 붐’이 다시 일 것이다. 애플의 ‘앱스토어’가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다. 개발자라면 누구나 앱스토어에 들어올 수 있고 실패해도 부담이 적다. 이처럼 창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성공한 기업인이 나올 수 있는 기술비즈니스 플랫폼을 만들어줘야 한다.”
―창의적인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가 있다면….
―일본은 16명이나 노벨 과학상을 받았다. 우리나라도 기초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알프레드 노벨이 노벨상을 만들 당시 수상자에게 주는 상금을 20년 치 연구비와 생활비 수준으로 정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20년간 한 분야의 연구에 몰두해야 노벨상을 받을 만한 실적이 나온다고 본 것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도 기초과학자들이 한 우물을 팔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현실은 어떤가.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대학교수나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마련하러 쫓아다녀야 한다. 박근혜 정부는 기초과학 가운데 특히 지원이 필요한 분야를 선정해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몰두하도록 지원을 해줘야 한다.”
―우리나라는 원천기술이 부족한 게 문제라는 지적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원천기술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이다.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을 상용화할 때만 해도 원천기술 특허를 가진 퀄컴에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했다. 이제는 우리의 기술 수준도 상당히 높아졌다. 예컨대 와이브로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원천기술 특허를 많이 갖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이 기술을 활용해서 사업에 뛰어들 수 있게 해야 한다.”
―과학자들의 사기를 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말로는 과학기술자를 존중한다고 하는데 임금이 형편없는 수준이다. 사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설립하고 과학기술자들에게 상당히 높은 급여를 보장하는 등 우대했다. 지금은 공무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급여가 떨어졌고 앞으로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급여 수준이 낮으니 인재가 오지 않고 자부심도 낮은 것이다. 연구소의 인사 문제도 그렇다. 정부는 연구소 인력을 전문화하라면서 연구소의 감사나 고문은 비전문가를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급여, 인사와 관련해서는 연구소에 어느 정도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복지 확대로 과학기술 분야 예산을 늘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어떤 분야에 집중해야 하나.
“선택과 집중은 후진국적 방식이다. 후진국은 선진국이 하는 것을 보고 특정 분야를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지원하면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은 다르다. 어떤 분야에 집중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해 본 뒤에야 희망이 보이는 분야를 찾아 집중할 수 있다.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마당을 만들고 그중에서 두각을 내는 분야를 집중 지원해야 한다.”
―정보통신 정책이 대기업 위주라는 비판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동안 정보통신 분야 연구개발을 통신사업자에게 맡겨 왔다. 과거에는 CDMA 상용화, 전전자식교환기(TDX) 개발 등에 막대한 연구비가 들기 때문에 대기업의 투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와이브로, 롱텀에볼루션(LTE) 등 최신 통신기술 장비는 과거 장비에 비해 가격이 많이 싸졌다. 과거에는 기지국 1개를 설치하는 데 4억∼5억 원이 들었지만 이제는 4000만∼5000만 원이면 된다. 중소기업도 연구개발을 하고 생산도 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중소기업들도 정보통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정보통신 관련 업무와 규제가 방송통신위원회, 국토해양부 등 여러 부처로 나뉘어 있어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있다.
“정보통신은 여러 산업이 관련돼 있으므로 미래창조과학부가 모든 정책을 다 할 수는 없다. 다만 각 부처는 정보통신 관련 사업 내용을 민간에게 공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토부는 지리정보서비스(GIS) 자료를 공개한 바 있다. 개인이나 사업자들이 이 정보를 이용해서 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가계통신비 부담이 적지 않은데 통신요금을 낮출 방법은 없는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가입비 면제를 얘기했는데, 가입할 때 한번 내는 비용을 없앤다고 요금이 낮아지지 않는다. 해법은 통신회사들의 경쟁을 유발하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정부의 통신 경쟁정책은 실패했다. 3개 통신회사가 결국 과점하는 형태로 유지됐다. 통신회사들이 실질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정부가 만들어 놓으면 통신요금이 자연스럽게 인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쟁을 통해 가입자 1인당 한 달에 1만 원씩 요금을 줄여준다면 연간 6조36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
○ 양승택 회장 프로필
△1939년 부산 출생
△1957년 동아고 졸업
△1961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1977년 미국 브루클린공대 박사
△1968년 벨연구소 연구원
△1981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TDX개발단장
△1992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
△2001년 정보통신부 장관
△2003년 동명대 총장
△2012년 인터넷스페이스타임(IST) 회장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youta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