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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 Up] “빚뱅 막아라!” 은행 골머리

입력 | 2013-02-21 03:00:00

새 정부 中企 살리기 움직임에 “대출은 늘려줘야 하는데, 부실은 피해야 하고…”




경기 안산에서 휴대전화 부품을 만드는 A사는 해외 원자재를 수입할 자금이 부족해 얼마 전까지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 회사는 2년 연속 적자가 이어지고 신용등급도 좋지 않아 은행 대출을 받기 힘든 상황이었다.

IBK기업은행의 문인수 심사역은 일단 회사로 찾아가 최고경영자(CEO)를 만나보기로 했다. 그가 만나본 CEO는 창업할 때까지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휴대전화 부품 기술을 연구해온 엔지니어로 원천기술과 특허를 가지고 있었다.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CEO의 의지가 강했고 직원들도 회사에 애정이 있어 보였다.

문 심사역은 이 회사에 300만 달러(약 32억4000만 원)의 신규 대출을 승인해줬다. 그는 “서류상으로만 봐서는 대출이 불가능한 수준이지만 현장에서 본 회사의 성장 잠재력이 대출을 해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중소기업 살리기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올해 들어 중기 대출에 대한 은행들의 부담감이 커졌다. 은행 입장에서 수익성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 기업에 대출해주는 것은 위험관리 차원에서 고민거리다.

‘중기대출 딜레마’에 빠진 은행들은 “현장에 답이 있다”며 발로 뛰어다니는 현장심사를 강화하고 나섰다. 재무제표로는 확인하기 힘든 CEO의 의지와 능력, 직원 역량 등 비재무적 평가를 강화해 잠재력이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 현장에 답이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지난해 중소기업 지원실적 및 2013년도 지원계획’을 보면 올해 국내 은행의 중기 대출 목표는 30조8000억 원으로 지난해(29조4000억 원)보다 4.8% 증가했다. 금감원은 은행들의 목표 대비 실적을 꾸준히 관찰해 부진한 은행에 대해서는 지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은행들도 올해 주요 과제로 ‘중소기업 지원’을 내걸었지만 건전성 관리가 중요한 금융회사 입장에서 무작정 중기 대출을 늘릴 수도 없다.

실제 2008년과 2009년은 중소기업들의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시기였지만 정책당국의 강한 압박으로 은행들은 중기 대출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국내 은행의 중기 대출 부실채권(NPL) 비율은 2008년 1.93%에서 2010년 3.11%까지 올랐다.

중소기업들이 경기 부진으로 수익성이 나빠진 상황을 고려하면 무분별한 대출 확대는 은행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과거 경험으로 교훈을 얻은 은행들은 중기 대출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려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은행들은 우선 현장에서 답을 찾고 있다. 중소기업 특성상 재무제표 같은 이론적 자료 외에 현장 분위기가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IBK기업은행은 지난해부터 ‘신속현장심사반’을 만들어 급하게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심사역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지원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정현관 여신심사부 팀장은 “심사를 자주 나가보면 현관에만 들어서도 이 기업이 잘될 기업인지 아닌지 대강의 느낌은 온다”며 “특히 직원들과 이야기해보면 기업의 지속가능성 여부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현장 방문은 올해 들어 은행장들이 더욱 열심히 나서서 하고 있다. 민병덕 KB국민은행장, 이순우 우리은행장,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연초부터 전국의 주요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기업을 방문해 현장의 소리를 듣고 있다.

○ CEO 평판 등 비재무적 평가 확대

박 당선인은 지난달 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국정과제 토론회에서 “금융사들이 중소기업에 대출해줄 때 성장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금융 창구에서 재무제표를 획일적으로 적용해 담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보다는 미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질적 지표를 좀 더 활용하라는 지적이었다.

이와 관련해 신한은행과 외환은행은 과거의 자료뿐 아니라 미래의 성장성을 반영하는 신용평가 모형을 개발 중이다. 우리은행은 중기 대출 시 필요한 신용평가에서 대표이사의 평판 항목을 추가해 재무제표상에 나타나지 않는 리스크를 사전에 예방하고 있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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