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논설위원
멀리서 봐야 보이는 길
조선에서 인조의 쿠데타 이후 노론이 집권한 17세기. 청나라가 명나라를 대체했지만 조선은 대명(對明) 의리론(義理論)에 사로잡혀 대청(對淸) 북벌론(北伐論)을 주장하고 있었다. 굳이 그들의 현실감각을 찾자면 북벌을 주장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북벌에 나서본 적이 없다는 정도다. 18세기 후반 북학파가 등장하고 나서야 오랑캐가 지배하는 청에서 배워야 한다는 현실인식이 싹텄다.
북학파도 조선이란 오지(奧地)를 벗어나서 보면 그리 시대에 앞선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배우고자 했던 청나라는 외교가 뭔지 무역이 뭔지도 알지 못했고 전근대적 조공(朝貢)에 집착하다가 아편전쟁에서 서구 열강에 무릎을 꿇었다. 청의 문물조차 뒤늦게 받아들인 조선은 다시 척사(斥邪)에 발목이 잡혀 개화에도 실패하고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지금 보면 반청(反淸)이 아니라 친청(親淸)이, 척사가 아니라 개화가 옳았음이 분명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잘 보이지 않았다.
북한의 핵무장 위협은 한반도를 다시 기로에 세우고 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는 탈냉전 시대의 시작을 알렸고, 2006년 10월 9일 북한 핵실험은 훨씬 문제가 많은 ‘포스트 탈냉전 시대’로의 돌입을 알리는 서막일지 모른다”고 쓴 것이 기억난다. 핵실험이 성공했느니 실패했느니 의견이 분분하니까 그 날짜는 늦춰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은 핵을 보유할 것이고 동북아시아는 포스트 탈냉전 시대에 들어설 것이라는 사실이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이후 지금까지 우리는 ‘잃어버린 20년’을 보냈다. 북한이 핵무장을 포기하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은 근거가 없음이 확실해졌다. 햇볕정책은 북한에 핵 개발 자금을 대주는 꼴이었고 대북제재는 중국이란 뒷문을 열어둔 탓에 별 효과가 없었다.
햇볕정책을 편 정권도, 제재를 한 정권도 중국이 북한을 움직여줄 수 있으리라는 미몽(迷夢)에 사로잡혔다. 1992년 시작된 한중 수교의 역사는 북핵 위기의 역사와 거의 겹친다. 그런데도 중국과의 관계는 전진만 있었지 후퇴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동아일보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중국 지도부는 후진타오 임기 중반 이후부터 우리를 너무 북한 편으로 보지 말아 달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중국 지도자들의 노회한 페인트 모션(faint motion)을 너무 믿는다는 느낌이 든다. 중국은 한 번도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행동을 한 적이 없다.
북핵에서 중국을 믿지 말아야
높은 산에서 강을 내려다보면 강 위로 떠올랐다 사라지는 물결은 보이지 않고 긴 물줄기만 보인다. 새 대통령은 역사의 줄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역사적으로 한 국가의 생존은 그 나라의 힘보다는 동맹에 의해 결정됐다. 북한은 조중(朝中)군사조약으로 맺어진 중국의 동맹국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흘러가버린 20년에 또 5년을 더하는 것으로 임기를 끝내지 않으려면 먼저 중국을 냉정한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