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북핵 딜레마에 빠진 한국] 키워드로 본 ‘패러다임 전환’ 전문가 조언

입력 | 2013-02-22 03:00:00

① 억지력 육해공 첨단무기 배치… 북핵과의 공존에 대비하라




김정은 3차 핵실험후 첫 군부대 시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겸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가운데 외투 주머니에 손 넣은 사람)이 인민군 323부대를 시찰하는 모습을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3차 핵실험(12일) 이후 첫 현지시찰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중앙통신은 정확한 촬영 일자를 밝히지 않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

《 “남한에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해야 한다.”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의 폐기를 선언해야 한다.”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정치권과 학계에서 제기되는 대북강경론이다.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반론도 적지 않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있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 이후 20년간 북한의 핵능력은 엄청나게 향상됐다는 것이고, 이는 비핵화 정책 20년의 실패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북핵 딜레마에 빠진 한국’은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한반도 비핵화가 매우 어려워진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지적한다. 한국정치학회장인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북한의 핵 개발 의도와 역량을 잘못 판단한 비핵화 정책의 접근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다. 북핵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위한 전문가들의 조언을 5개 키워드로 정리했다. 》

최강 국립외교원 교수는 “엄존하는 북한 핵을 부정하지 말고 북한이 핵을 갖고 장기전으로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를 바꿔야 하며, 그 출발점은 북핵 억지력을 먼저 갖추는 것이라는 얘기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그 억지력을 ‘북핵과의 공존전략’으로 규정했다. 김 전 원장은 “남북한 핵 불균형 상태의 해소 없이 상호호혜의 남북대화도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억지력은 핵을 가진 북한과 동등하게 대화하기 위한 전제라는 얘기다. 그는 첨단무기를 공중-지상-바다에 각각 배치하는 ‘3축(軸)체제’를 갖추자고 제안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폐기, 전술핵 재배치까지도 대북정책의 옵션(방안)으로 테이블에 올려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의 자체가 억지력을 위한 카드이며, 어떤 건 안 된다고 먼저 얘기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② 이중전략―왼손으로 채찍질 오른손은 악수

北 전역에 소규모 협력사업 적극 개발


전문가들은 “억지력을 갖추면 당당한 관여(engagement)가 가능하고 북한 경제사회의 변화를 촉진할 신뢰프로세스의 힘이 생긴다”고 입을 모았다.

당근과 채찍, 강경책과 유화책, 원칙과 유연성을 자유자재로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전 원장은 “북한이 오른손으로 악수하고 왼손으로 도발하면 우리도 오른손으로 악수하면서 왼손으로 채찍을 휘두르면 된다”고 말했다. 대북 제재 국면에서도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기 위해 북한 유학생의 해외 방문초청 등 교류 접촉면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 교수는 “개성공단처럼 특정 지역에 편중된 대규모 경제협력보다 북한 전 지역의 경제사회에 ‘침투할’ 소규모 협력사업을 개발하라”고 조언했다.

③ 두려움―북에 핵 안고 무너지는 두려움 심어라

외부정보 공급 늘려 주민들 인권 눈뜨게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핵문제만 풀리면 모든 문제가 다 풀리는 것처럼 생각했던 게 패착요인”이라고 말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북한 체제(system)이며, 북한 체제의 변화를 유도하면서 북핵문제를 푸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당국자들은 북한체제의 급소는 북한주민의 인권문제에 대한 자각과 외부정보의 유입이라고 말한다. 3대 세습체제에 대한 북한 주민의 불만, 인민의 삶을 돌보지 않고 대량살상무기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는 시대착오적 현실 등이 북한사회 저변에 확산될 트리거(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북한 지도부에 핵을 가지고도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준다. 유 교수는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체제변화를 막을 수 없다는 선택의 순간까지 몰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④ 주인의식―통일전략의 확고한 오너십 가져라

北핵, 北美 아닌 南北 문제로 접근해야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핵 문제를 여전히 북-미 간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남한 내에 있다”면서 “한반도 평화협정도 북-미 간 협정이 아니라 남북 간 협정의 문제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실려 미국을 겨냥할 수도 있지만, 훨씬 더 손쉽게 남한을 표적으로 삼는 전술핵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한국이 북핵문제에 확고한 오너십을 갖고 대처해야 하는 이유이다. 신기욱 스탠터드대 아태연구소장은 최근 동아일보 기고에서 “미국은 20년간 북핵문제에서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데 지쳐 있으며, 한국이 돌파구를 마련해 주길 바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북한의 3차 핵실험은 기존의 분단관리용 대북정책이 불가능해졌음을 보여준다”며 “현상돌파형의 통일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⑤ 아킬레스건―중국의 아킬레스건을 자극하라

美 MD 체제 가입 카드로 中 압박 필요


북한의 농축우라늄 핵 프로그램 개발 사실이 드러나 2차 북핵 위기가 진행되던 2003년 중국은 북한과 연결된 원유공급 송유관을 수리를 핑계로 3일간 잠갔다. 북한으로서는 치명적인 중국의 제재였다. 박병광 연구위원은 이런 극약 처방을 ‘바그다드 효과'라고 분석했다. 같은 해 미국의 이라크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자 중국이 북한체제 붕괴를 막기 위해 미리 북한의 군기를 잡았다는 것이다.

한석희 연세대 교수는 “북한이 변하려면 중국이 변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이 방치되면 한국도 중국이 아파할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중국과 논의해야 한다. 중국 스스로 대북정책을 변화시킬 내부 동기가 만들어지게 하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북한이 자꾸 도발하면 미국 미사일방어(MD) 체제에 들어오라는 요청을 한국이 거부할 방도가 없다는 얘기를 중국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중국 내 반북시위가 확산되는 등 중국이 대북정책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