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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종교 다원주의 속에서 공동체 통합의 길을 발견하다

입력 | 2013-02-23 03:00:00

아메리칸 그레이스/840쪽·4만8000원·페이퍼로드
로버트 D 퍼트넘, 데이비드 E 캠벨 지음·정태식 안병진 정종현 이충훈 옮김




언제부터인지 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기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논란이 됐다. 이 퍼포먼스가 “불편하고 당혹스럽다”고 질타를 받는 일도 많아졌다. 그 ‘특정 종교’에 대한 반감은 교회를 새로 크게 짓거나 담임목사직을 세습하고 정치적으로 치우친 발언을 할 때도 가차 없다. 과거에는 사회봉사나 학교 운영 등으로 미더운 시선을 받던 교회이건만….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전작 ‘나 홀로 볼링’에서 갈수록 개인주의화되고 공동체 의식이 실종되는 미국인들의 성향을 지적했던 저자 로버트 D 퍼트넘 교수(하버드대 케네디스쿨)는 5년간 미국에서 5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미국 사회의 종교관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달라졌음을 밝힌다. 이는 한국에도 참고가 될 만하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신앙과 종교에 대한 첫 번째 변화는 기성 체제에 대한 반발이 커졌던 1960년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불거져 나왔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1970, 80년대에는 신보수화 경향을 불러왔고, 다시 1990년대부터 보수화된 교회와 종교를 앞세운 정치인들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많은 미국인이 종교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종교(주로 개신교)에 대한 강한 집착과 강한 거부감이 동시에 표출되면서 미국 사회는 분열했으며 오늘날 한쪽에서는 ‘오직 성서대로 살자’고 고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종교가 다 뭐냐’고 하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교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분열이 어떤 나라들에서처럼 종교 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종교 덕분에 무관심의 장벽을 뚫고 정치와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미국인이 많다. 또 서로 다른 종교적 입장을 이해하고 관용하려는 자세가 주류가 됨으로써 미국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측면도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종교 다원주의’ 현상이 공동체 유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긍정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미국의 축복’(아메리칸 그레이스)이다.

생각해 보면 ‘종교 양극화’와 ‘종교 다원주의’가 공존하는 이런 묘한 현상은 종교가 도덕 영역의 보루가 되는 한편으로 국가 운영의 영역에서는 손을 떼는 게 옳다는 공감대에서 비롯하고 있다. 그래서 가령 낙태 문제를 두고는 종교인이냐 아니냐에 따라 견해가 뚜렷이 나뉘지만, 세금을 더 많이 걷을 것이냐의 문제에서는 별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본래 미국처럼 종교에 크게 몰두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한때 ‘잘살아 보세’의 원동력을 제공했던 종교는 보수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공격받고 있다. 이처럼 탈종교화를 넘어 종교혐오 현상까지 빚어질 때, 가뜩이나 기반이 약한 한국의 공동체 의식은 어찌 될 것인가.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방대한 자료와 예리한 혜안을 엮어 써낸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함규진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