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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북 카페]고어가 내다본 미래 사회… 기술 진보의 빛과 그림자

입력 | 2013-02-23 03:00:00


환경운동으로 200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사진)이 올해 초 오랜만에 내놓은 신간이 단번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노벨 평화상 수상에 직접적 계기가 된 저서 ‘불편한 진실’(2006)과 ‘이성의 위기’(2008)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미래-글로벌 변화의 6가지 동인’. 558쪽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으로 이전 저서의 내용과 다소 중복되거나 과장된 느낌도 없지 않지만 고어가 조망한 미래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이 흥미진진하다.

고어는 이 책에서 미래를 바꿀 6가지 결정 인자를 △경제의 세계화 △디지털 혁명 △기후 변화 △천연자원의 감소 △지구 권력의 변화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규정했다. 저자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부통령으로 정보화고속도로 구축을 강하게 밀어붙였던 만큼 디지털 혁명에 대한 상당한 혜안을 갖고 있다. 그는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는 ‘로보소싱(robosourcing)’이 진화해 로봇이 더이상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내다보고, 이는 실업문제를 더욱 악화시켜 중산층의 붕괴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유타 주에 20억 달러를 들여 짓고 있는 새로운 설비가 전화 e메일 문자메시지 구글 검색을 모니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지적하며 프라이버시 보호와 사이버보안이 앞으로 더욱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은 생명공학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를 유전적으로 개량하려는 새로운 우생학이 만개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태어날 아기의 머리와 눈 색깔, 신장, 지능 등을 선택해 ‘디자인된 아기’를 탄생시킬 수 있어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낳을 것이라는 경고도 있다. 또 여성이 정자를 직접 생산해 더이상 남성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으며 이로 인해 동성커플들이 생물학적으로 자신들의 자녀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것. 천연자원과 관련해서는 작물 파동을 우려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성이 높은 품종 재배에 점점 집중하게 되면서 예상치 못한 병충해와 기후 변화를 겪게 될 경우 식량 부족의 충격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고어는 이 책에서 다가올 미래의 밝은 면과 부작용을 함께 다뤘지만 어두운 면을 좀더 많이 부각시켰다. 그러면서도 기후변화에 따른 인류 재앙을 막을 낯익은 정책 외에는 다른 분야에서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그는 미래에 닥쳐올 위협에 맞서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미국 정치시스템의 개혁을 통해 세계 지배구조를 재정립해야 함을 많은 분량을 할애해 강조했다.

그는 현재 미국 정치시스템은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와 정치자금의 젖줄인 기업들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어 정작 필요한 정책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대중의 의견을 전달해야 할 미디어마저 자본 논리에 빠져 대화와 집단 의사결정의 프로세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왠지 울림이 떨어진다.

그가 대주주로 있었던 커런트TV의 지분을 지난달 중동의 방송매체인 알자지라에 5억 달러에 매각한 데 이어 최근 사외이사로 있는 애플의 스톡옵션을 행사해 역대 가장 부유한 부통령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특정 분야를 다룬 미래 서적과 달리 방대한 분야를 두루두루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 만하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