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벤치의 책 읽는 동상(왼쪽)과 뒤쪽의 동상. 남녀 모두 시를 읽고 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이 동상을 보러 온 시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남성이 들고 있는 책이 과연 무엇이냐는 것. 이 같은 궁금증은 펼쳐진 책을 자세히 보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누워서 보는 별 하나는/진정 멀-고나/아스름 다치랴는 눈초리와/금실로 이은 듯 가깝기도 하고’로 시작하는 정지용 시인의 ‘별’이라는 작품이다.
이 동상은 광고대행사를 운영하는 이채형 디자인사람들 대표가 2010년 세웠다. 이 대표는 “시민들에게 시를 많이 알리고 싶어 ‘시가 흐르는 서울’ 사업을 후원하고 있었는데 이 사업의 일환으로 동상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동상의 제목도 ‘시가 흐르는 서울’이다. 그는 “사람들이 이 동상을 보고 시에 좀 더 관심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의 시를 동상에 넣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왜 하필 남성이 책을 읽는 모습을 형상화했을까. 이 대표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층 대부분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기에 온화한 남성의 모습을 한 동상이 있으면 주변의 여성들과 어울려 더 조화로운 풍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모으는 동상이지만 제작 과정에선 우여곡절이 있었다. 애초 기업의 협찬을 받아 동상을 제작하려고 했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협찬 계획이 무산된 것. 결국 이 씨는 사비 6000만 원을 들여 동상을 세웠다. 이 씨는 “당시 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이제 시민들은 물론이고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서울의 명소가 돼 뿌듯하다”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