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1942∼)
깊은 바다나 옅은 강이나
자고로 물고기는 투망으로 잡았다.
저인망, 안강망, 정치망, 유자망, 채낚기, 통발을 던지고,
끌고, 쳐서 잡는 저
싱싱한 해산물의 펄떡임이여,
어찌 이뿐이겠는가.
나는 새,
기는 짐승 역시 혹은 그물을 치고 혹은
덫이나 올무를 놓아 포획하지 않던가.
무릇
살아 있는 생명은
공중이나 지상이나 물속이나
인연의 끈을 비비고, 꼬고, 묶고, 엮어 만든
매듭에 한번 얽히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나니
아하, 저 농부,
봄 되어 날 풀리자
논두렁, 밭두렁 손질이 부산하다.
비록 땅에서 소출하는 작물이라 하나
그 역시 뭍에서 사는 생물일시 분명할지니
어찌 투망치지 않고서 거두어 낼 수 있으랴.
봄에 던져
가을에 걷어 올릴 논둑의 저 성긴
저인망 그물이여!
그늘진 곳에 쌓인 눈도 채 녹지 않았고, 사월이 오기 전에 한두 차례 더 눈이 내릴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휘지게 하는 서울의 겨울 끝, 을씨년스러운 바람. 하지만 이제야말로 ‘봄 또한 멀지 않으리’! 이미 저 남쪽 지방의 산과 들은 속닥속닥 돋아나는 어린 싹들로 땅거죽이 들썩거리고 있으리.
다랭이 논(다랑논), ‘경사진 산비탈을 개간하여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 푸른 작물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연출할 굽이굽이 다랭이 논. 하지만 보기 아름다우라고 만든 논이 아니다. 한 뼘이라도 더 논을 늘리려는 의지로 개간된 땅이다. 멀쩡한 논밭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숱하게 사라지는 이 마당에 외딴 산비탈에서, ‘아하, 저 농부,/봄 되어 땅 풀리자/논두렁, 밭두렁 손질이 부산하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