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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실조 군대… 밤마다 민가 식량 도둑질”

입력 | 2013-02-25 03:00:00

핵개발 뒤에 가려진 北인민군의 처참한 실상… 탈북 여군중대장 인터뷰




북한군 여군 중대장 출신인 송모 씨. 그가 청춘을 바친 북한군은 핵실험의 그늘 뒤에 기아와 결핵이 만연해 있는 곳이었다.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모습을 실루엣으로 촬영했다. 북-중 접경지역=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우리 여군들도 밤마다 도둑질하러 다녔습네다. 감자나 무를 훔쳐서 배를 채웠지요.”

최근 북한-중국 접경지역에서 만난 30대 후반의 인민군 여군 대위 출신 송모 씨. 2년 전 북한을 빠져나와 중국에서 다른 탈북자들과 숨어 사는 그는 탈출 전 군대에 있었던 10년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가 청춘을 바친 인민군은 한쪽에서는 고도기술의 집약체인 핵실험을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영양실조로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곳이다.

송 씨는 대학 졸업 뒤 최전방인 강원도 모 지역에서 고사포 부대 중대장으로 있었다. 1개 중대는 25명 안팎인 소대 3∼5개로 구성된다. 고사포는 대부분 여군이 담당한다. 제대 후 잠깐 사회생활을 한 뒤 북한을 탈출한 사이 역시 군인이던 남편은 간암으로 숨졌다. 자녀들은 아직 북에 남아 있다.

그는 군에서 도둑질을 배웠다. 여자 사병들과 인근 민가의 밭에서 몰래 작물을 뽑아 와 식량으로 대신했다. 송 씨는 “하루 배급이 감자 몇 알인 때도 부지기수”라며 “전방은 부대 주변에 사민(私民·민간인) 집들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배가 고파 어쩔 수 없이 사민 밭을 털어야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남자 군인들은 사민 집에서 짐승이면 짐승, 담장의 호박이면 호박 모두 걷어 간다. 전등을 빼 와 파는 경우도 많다”라고 했다.

물자 부족과 기근은 여군들에게 더 큰 피해를 줬다. 송 씨는 “경도(생리)가 끊기고 머리카락이 빠져 더 스산하다(처참하다)”라며 “한 소대에 영양실조가 5, 6명, 결핵이 또 5, 6명이다. 웬만큼 든든한(건강한) 여군은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전했다. 영양 상태가 부실하고 위생이 불량해 결핵이 창궐하지만 당국은 민심을 의식해 환자들을 전역시키지 않고 별도로 격리해 놓는다.

군대 사정이 어려워진 건 역설적으로 강력한 선군정치를 표방한 김정일 체제에서부터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후 그해 9월 애도기간이 끝나자 매달 1kg씩 배급되던 당과류(설탕 등) 공급이 끊어졌다. 송 씨는 “당시 식량난으로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군에 대한 처우도 열악해지기 시작했다고 들었다”라며 “이후 경제 사정이 계속 악화된 데다 군대 내 부패가 심해져 사병은 물론 중간 간부들의 생활도 말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 “소대 25명중 10명이 영양실조-결핵 ▼

북에서는 제일 못사는 계층이 ‘산골 군부대 가족’과 ‘군부대 주변 농민’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고 한다. 군이 먹을 게 없어서 민가를 덮치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 7월 황해남도의 군부대 주변에서 건너온 사람에게서 ‘동네 사람들이 인육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라며 “내가 북에 있을 때보다 상황이 더 안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 보급 사정이 악화되면서 군대 내에서도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생활 격차가 극심하다. 당의 간부들은 자녀를 군에 보내지 않기 위해 아예 면제시키거나 부대 주변 민간인 집을 정해 놓고 그곳에 주기적으로 자녀들을 보내 영양을 보충시킨다고 한다.

송 씨는 북한군 신병 입대 기준이 최근 키 145cm에서 142cm로 낮아진 데 대해 “조선(북한) 사람들이 못 먹어서이기도 하지만 당 간부들이 저마다 애들을 군에 보내지 않기 때문에 결원이 생겨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심각한 사기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입영 열차가 전방인 강원도에 들어서면 신병들이 열차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해 군이 골치를 앓고 있다”고 전했다. 김정일 정권 말년에는 군대 안에서도 국가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고 한다. 송 씨는 “장군님이 보천보경음악단 등에 가서 격려하는 모습이 많았는데 주변에서는 ‘맨날 저런 서클하는 데(노래나 공연하는 단체)나 따라다니고 있다’라는 말들이 나오곤 했다”라고 전했다.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데도 북한이 수십억 달러가 드는 핵개발에 집착하는 데 대해 그는 외부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지만 체제를 결속하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었다. 송 씨는 “핵실험을 하면 조국이 위대한 과업을 완수했다고 홍보하는데 군인과 인민이 거기서 위안을 얻는다”라며 “이후 미국이 제재를 한다고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주민들은 ‘맞받아서 전면전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에 들떠 일어서게 된다”라고 말했다. 제재 국면 이후 대화가 재개돼 서방과 한국 등이 북에 원조를 시작하게 되면 현지에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전술적 지략에 의해 우리가 승리를 쟁취했다’는 집단 착각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북한으로서는 핵개발을 전후해 발생하는 ‘북의 도발→국제사회 제재 논의→북-미 대화 국면→서방의 대북 원조’ 과정이 취약한 내부를 단속하는 데 더없이 좋은 수단인 셈이다. 그는 “핵실험이 조국에 정말 필요한 것인지 의심하는 사람이 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일반 주민은 정보가 없기 때문에 지도부의 선전을 믿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가 양곡을 걷어갈 때도 군량미라고 하면 반발이 덜하다. 핵무기도 만들고 미사일도 쏘아 올려야 한다고 하면 다른 말이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송 씨는 현재 한국의 한 인권단체를 도와 다른 탈북자들의 중국 내 정착이나 제3국행을 지원하고 있다. 그중에는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군인 탈북자도 상당수 있다고 한다. 그는 “나는 입대할 때 ‘통일 병사’가 돼 조국에 목숨을 바치려 했다”라면서 “하지만 지금도 통일은 안 됐고, 우리 군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려워졌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북-중 접경지역=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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