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제가 역마살이 있다고들 합니다. 걱정이 됩니다. 역마살이라는 게 나쁜 것 아닌가요?’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이다. 역마살이 있다고 하면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역마살 하면 유달리 이사를 자주 다니거나 한 직장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돈다거나 사업을 하더라도 자주 업종이 바뀌어 만날 때마다 주는 명함이 다른 사람을 떠올린다.
자동차 정비기술자이자 목사인 60대 한 분을 알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전국 각지를 떠돌며 살다 카자흐스탄, 베트남을 거쳐 현재 캄보디아에서 살고 있다. 부인과 아들은 한국에서 산다. 객지에서 혼자 숙식을 해결하며 선교활동을 하는 한편 자그마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한다. 이분의 사주에는 어김없이 ‘역마살’이 딱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에게 역마살이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진 것은 문화적인 탓이 크다. ‘농경사회적 관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유목민족이 이동의 삶인데 비해 농경민족은 정착민의 삶이다. 정착민에겐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고난의 삶을 의미한다.
특히 어릴 적 농촌에서 살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민들이 고향을 떠날 때는 도둑질, 이뤄질 수 없는 사랑, 가난 등 그 마을에서 살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야반도주’한 형태가 많았다. 또 역사적 경험상 우리 민족에게 ‘이동’이란 그 어느 민족보다 고통스러운 삶을 의미했다. 오래전부터 왜구와 북방 오랑캐의 침략과 6·25전쟁 등 각종 전쟁에 시달리며 살아 왔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보따리를 싸고 산으로 들로 타향으로 피란을 갈 수 밖에 없던 뼈저린 체험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국을 떠나 타국을 떠돌고 경제성장 과정에서는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이주하여 뼈 빠지게 고생을 했으니 ‘역마살’은 고통과 두려움을 떠올리는 나쁜 사주의 대표 격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1948년 1월에 발표된 김동리의 소설 ‘역마’도 고향을 떠나 세상을 떠도는 민중의 신산(辛酸)한 삶이 잘 그려져 있다.
하지만 음양학에서 역마살을 나쁘게만 본 것은 아니다. 잘 활용하면 좋은 작용을 한다고 봤다. 음양학 저서인 ‘촉신경(燭神經)’이란 책에 의하면 ‘역마가 쇠약하면 성격이 우유부단하여 용두사미가 되고 시비가 많이 발생하고 이루어지는 것이 없으며 사방으로 떠돌아 한곳에 안주하지 못한다. 반면 역마가 생왕(生旺)하면 운치가 있고 인기와 명망이 높다. 역마가 재와 관에 임하여 유력하면 복력(福力)이 풍부하여 사업, 무역업으로 많은 돈을 번다’라고 했다.
더군다나 현대인에게 역마살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교통 통신이 발달하고 전 세계는 ‘글로벌’이란 말처럼 하나의 큰 마을이 되어 가고 있다.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접어든 지 오래되었으며 전 세계를 내 집 드나들듯이 다니며 사업을 하는 기업가도 많다.
해외여행 출장 영업 이민 물류 운수 통신 관광 운동경기 연예공연 정보 신문 방송 인터넷 우편 등 이동성 변동성 소통과 관련된 ‘역마살’로 해석되는 산업이 현대 산업의 주종을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 5대 그룹이 다 ‘역마성(性)’ 사업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다.
역마살이 있는 사람은 부지런하고 활동적이다. 우리가 가진 ‘빨리빨리’ 성격에다 역마살의 지혜를 보태면 미래는 더욱 성공적일 것이다. 역마살을 나쁘게만 보지 말고 현대 사회에 맞게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 필자는 40여 년 동안 주역 및 사주명리학과 동양고전을 연구해 왔으며 그동안 30여 권의 역학 해설서를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