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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지기 풋풋한 情 이젠 나눌수가…”

입력 | 2013-02-26 03:00:00

양승태 대법원장, 故 정두희 명예교수 보내며 ‘눈물의 추도사’




양승태 대법원장이 22일 서강대 성이냐 시오관에서 열린 고 정두희 서강대 명예교수의 장례미사에서 자신이 직접 쓴 추도사를 읽고 있다. 서강대 제공

“어릴 적 한 방에서 뒹굴며 장난치던 그 얼굴 다시 볼 수 없고, 바위투성이 능선을 넘어 눈바람 치는 깊은 산중에 텐트를 치고 소주잔을 기울이던 그 풋풋한 정을 다시는 나눌 수 없게 됐네.”

양승태 대법원장(65)이 최근 50년 지기(知己)인 역사학자 정두희 서강대 명예교수를 떠나보내며 직접 추도사를 써 깊은 석별의 정을 표시했다. 양 대법원장과 정 명예교수는 고교 시절부터 절친한 관계였다. 정 명예교수는 위암으로 20일 별세했다. 향년 66세.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양 대법원장은 22일 오전 7시 서강대 성이냐시오관에서 열린 정 명예교수의 장례미사에 참석해 추도사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양 대법원장은 “반백 년을 가족 같은 믿음으로 서로 의지해 왔는데, 나를 애통케 하고 가는 길이 너무 매정하고 원망스럽다”고 애도했다. 또 “찢어지게 가난하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내면서도 나는 (당신의) 그 고운 마음과 순결한 품성이 흐트러지는 것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항상 몇 수 앞을 내다보는 지혜가 있어 앞으로 펼쳐질 미지의 인생을 두려워하는 친구들에게 스승이 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양 대법원장은 장례미사를 마친 뒤 지인에게 “내 몸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故 정두희 교수

두 사람은 1963년 경남고 1학년 때 만나 줄곧 친분을 유지해왔다. 충남 부여 출신인 정 명예교수는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해 경남고에 입학했다. 이후 정 명예교수의 부모가 다시 부여로 돌아가자 양 대법원장은 3년간 정 명예교수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했다. 양 대법원장이 서울대 법학과에, 정 명예교수가 서강대 사학과에 진학해 서울로 왔을 때도 함께 하숙했을 정도로 친분이 두터웠다.

두 사람은 함께 등산을 다니며 역사에 대해 토론해왔다. 양 대법원장이 판결 때문에 고민하면 정 명예교수는 “역사와 여러 위인의 시각에 비춰 생각해 보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정 명예교수는 항상 역사 안에서 자신을 돌이켜보는 삶의 자세를 강조했고, 깊은 학문적 열정과 따뜻한 마음으로 후학들의 존경을 받았다. 양 대법원장은 24일 경기 양주시 불곡산 기슭에 안치된 정 명예교수의 묘소에서 열린 삼우제에 참석해 고인을 배웅했다.

1990년 서강대 사학과 교수로 임용된 정 명예교수는 ‘조선 초기 정치지배세력 연구’ ‘조선시대 인물의 재발견’ ‘조광조’ ‘임진왜란, 동아시아 삼국전쟁’ 등 다수의 역사서를 집필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