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작품을 하려고 태어난 것 같아요. 진짜 행복해요.”
뮤지컬 배우 홍광호(31)의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16일에 개막한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덕분에 홍광호는 매 순간이 즐겁고 또 즐겁다.
‘살짜기 옵서예’에서 사별한 부인과의 정조를 지킨다고 약속했지만 제주 최고의 기생 애랑과 사랑에 빠져 버린 배비장 역을 맡은 홍광호는 애랑 뿐 아니라, 관객과도 사랑에 빠져버렸다. 관객들이 행복해하는 모습만 봐도 가슴이 설렌단다.
조선 말기 작가 미상의 소설인 ‘배비장전’을 원작으로 하는 ‘살짜기 옵서예’는 1996년 패티김 주연으로 초연했던 한국 최초 창작뮤지컬. 라이선스가 넘쳐 나는 요즘 뮤지컬 무대에서 한국 고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의미가 깊다.
“라이선스 작품을 하면서도 창작뮤지컬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어요. 그래서 ‘살짜기 옵서예’를 단번에 하기로 마음을 먹었죠.”
평소 창작뮤지컬에 관심이 많았던 홍광호는 ‘살짜기 옵서예’에서 느꼈던 예상치 못한 환호에 놀라고 있다. 극장에서는 보기 힘든 초등학생부터 중장년 게다가 노년층까지 극장을 찾아 좌석을 가득 메우고 있기 때문.
“잘 알려진 극이 아니라서 조금 걱정을 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좋은 반응에 감동 받고 있어요. 외국 라이선스 작품처럼 우리 작품도 외국에서 좋은 반응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뮤지컬에 데뷔할 때 선배님들과 꼭 같은 무대에 서고 싶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막상 실현이 되니 실감은 안나요. 아직도 꿈길을 걷는 기분이에요.”
기생 애랑이의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단번에 사랑에 빠지는 배비장의 모습을 보며 “남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 똑같은 것 같다”고 하자 홍광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뮤지컬은 단번에 사랑에 빠지더라고요.(웃음) 그래도 고전 ‘배비장전’보다 지금이 훨씬 나아요. 원작은 아내가 살아있지만 여색을 밝히고요. 기생인 줄 알면서 덤벼들어요. 현대판 배비장은 애랑이가 기생인지도 몰랐고 사별한 아내를 둔 사람이잖아요. 현대판 애랑이도 양반들에게 당하기만 해서 사랑을 못 믿는 사람이고요. 사랑을 잃은 두 사람이 진정한 참사랑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어요.”
홍광호는 “만약 현대판 배비장이었다면 참사랑을 찾는 사람일거다”라며 “우리 극을 보고 사랑을 잃어버린 분들이 하루빨리 참사랑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페라의 유령’ ‘닥터 지바고’ ‘맨 오브 라만차’ 그리고 ‘살짜기 옵서예’까지 쉼 없이 달려온 홍광호도 내면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동안 꿈꿔왔던 작품과 역할을 막상 하고 나니 ‘다음은 어떤 걸 해야할까?’하는 고민이 자신을 옭매기 시작한 것.
하지만 그 생각 역시 교만이라고 생각했고 ‘맨 오브 라만차’를 하며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했고 앞만 보고 달리던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 역할에 가치를 두지 않고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관객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드리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각의 전환은 홍광호를 긍정적으로 바꿨다. 그래서 ‘살짜기 옵서예’ 무대를 발걸음은 늘 가볍고 신이 난다.
“(최)재웅형이 바쁘셔서 제가 공연을 많이 하지만 저는 좋아요. 공연장을 가는 게 정말 행복하고요. 형이 공연하는 날에도 제가 하고 싶어요. 매일 매일 서고 싶어요. 무대에 서면 제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아요.”
최근 뮤지컬 배우들이 스크린과 TV를 종횡무진하며 활약을 하고 있는 가운데, 홍광호는 다른 분야로 진출할 생각은 없을까. 그의 대답은 “아직 해 낼 자신이 없다”였다.
“어렸을 적 꿈이 뮤지컬 배우여서 다른 분야를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게다가 제가 가진 작은 재능이 뮤지컬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가능성을 닫진 않아요. 그것조차 교만이니까요. 제가 선택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기회가 생기면 제 마음이 설레는 쪽으로 선택하고 싶어요.”
뮤지컬 배우가 하늘의 뜻인 듯한 홍광호의 꿈은 무엇일까.
“무심코 제 작품을 보시는 관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가 즐거운 것도 중요하지만 행복을 전달해드리는 가치보다 더 중요한 건 없을 것 같아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사진제공|CJ 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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