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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박영서]왜 슈퍼컴퓨터인가

입력 | 2013-02-27 03:00:00


박영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 개발과 블랙홀에 대한 연구, 자동차 개발업체 포드의 차세대 친환경 고연비 내연기관 개발, 스페인의 비고 대학병원의 방사선 항암치료법 연구, 스위스 로잔 공대의 인간두뇌 연구 프로젝트, 미국 일리노이대의 극초단타 주식거래 패턴 분석과 실제 투자.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슈퍼컴퓨터이다.

슈퍼컴퓨터란 보통 컴퓨터로는 풀 수 없는 대용량의 정보를 초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는 컴퓨터다. 전 세계에 약 500대가 있으며 한국은 그중 4대를 보유하고 있다.

슈퍼컴퓨터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과학기술 개발은 물론이고, 일상생활의 사소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무궁무진하다. 기초연구 강화는 물론이고 국가적 위기 상황을 예측, 방지할 수 있으며 제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의학이나 영화 제작 기술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지난해 9월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 개봉한 국산 3차원(3D) 애니메이션 ‘다이노타임’은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제작 기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었다. 3D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제작한 영상을 극장 상영용 영상으로 전환시키는 ‘렌더링’ 작업이 필요한데, 90분 분량의 ‘다이노타임’은 26만 장의 그림을 렌더링하는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보통 컴퓨터라면 4년 이상이 걸릴 이 렌더링 작업을 단 4개월 만에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이 보유한 슈퍼컴퓨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슈퍼컴퓨터를 응용할 수 있는 범위는 우주 개발부터 주식 거래, 영화 제작까지 실로 다양하다.

지금까지는 과학자들이나 대학, 연구소 등이 주로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왔다면, ‘다이노타임’ 제작 사례처럼 중소기업들이 콘텐츠 제작이나 차세대 기술 개발에 슈퍼컴퓨터를 적극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심지어 뮤직비디오 컴퓨터그래픽(CG)에 슈퍼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지 문의하는 콘텐츠 제작사도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이제 슈퍼컴퓨터는 단순히 연구소 활용 차원을 벗어나 산업체, 학계, 연구소가 공히 활용할 수 있는 단계로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슈퍼컴퓨터는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 창출,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핵심 요소일 뿐 아니라, 우리 기업과 문화 콘텐츠의 경쟁력을 육성하는 데도 큰 몫을 하는, 참으로 ‘다재다능하고 친숙한’ 컴퓨터가 된 것이다.

작년 12월 21일 슈퍼컴퓨팅육성법(정식 명칭은 국가초고성능컴퓨팅 활용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에 따라 KISTI 슈퍼컴퓨팅센터가 국가센터로 지정되면서 KISTI는 올해 1월 1일 슈퍼컴퓨팅센터를 국가 슈퍼컴퓨팅연구소로 확대 개편했다. 이처럼 슈퍼컴퓨팅 관련 연구를 육성하는 것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국가적 인프라 강화 차원에서 슈퍼컴퓨터 연구를 활성화하는 사례는 미국 일본 유럽 등 여러 선진국에서 이미 보편화된 현상이다. 미국의 국가경쟁력위원회는 국가경쟁력 강화와 국민의 안전 보장에 슈퍼컴퓨터가 필수적이라고 판단해 중점 지원하고 있고, 일본과 중국 역시 가장 빠른 컴퓨터 개발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 전 분야에서 슈퍼컴퓨터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2017년까지 슈퍼컴퓨팅 7대 강국으로 진입’이란 비전과 5개년 기본계획을 작년 말 수립한 바 있다. 슈퍼컴퓨터가 창조경제 실현의 핵심 수단으로 신산업과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을 기대한다.

박영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