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희(1981∼)
시로 쓰기에 적합한 소재가 아닐지 모른다
시가 안 될지도 모른다
시가 아닌 글을 쓰게 되더라도
이건 꼭 써야겠다 싶어서
러시앤캐시는 나쁘다
신용등급 9, 10등급도 대출을 해준다고
지하철 안에 지면 광고를 하고 있다
너무 나쁘다
왜 그 사람들이 돈을 빌릴까
집에 누가 많이 아픈가
누구한테 사기를 당했나
캐시로 러시하게 된 사람들
캐시로 러시하게 된 사람들
캐시로 러시하게 된 사람들
러시 러시 러시 러시
캐시 캐시 캐시 캐시
러시 러시 러시 러시
캐시 캐시 캐시 캐시.
이 시는 김연희의 가장 뛰어난 시에 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천박함과 으스스한 그늘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쩌다 케이블TV를 틀면, 주로 음산한 범죄물인 미국드라마들, 그 막간마다 러시앤캐시뿐인가, 수많은 대부업체 광고들. 지금 당장 전화주세요, 나는 기댈 데 없는 당신의 친구, 친구, 친구랍니다! 대부업체의 최면 거는 듯 되풀이되는 광고에 말세를 알리는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 암울해진다.
러시앤캐시, 빨리 달려가면 현금이 나온다? 이름 참 잘 지었네! 러시랑 캐시랑 운을 맞춰 입에 딱딱 붙는구나. 신용등급 9등급 10등급에 ‘캐시로 러시하게 된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 그들이 대부업체에 줄을 대는 순간부터 더 늘어날 빚. 벗어날 수 없을 추심원과 이자의 무시무시함. 너무도 빤한 결말에 ‘시가 안 될지도 모른다’ 생각하면서도 시인은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 없이 빌린 소소한 빚에서 시작된 한 가족 전원의 끔찍한 붕괴를 그린 미야베 미유키의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화차’가 떠오른다.
시의 마지막 연이 너무 슬프다. ‘러시 러시 러시 러시/캐시 캐시 캐시 캐시….’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