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맥주소믈리에 랍 셸먼에게 듣는 ‘맥주 음미하는 법’
“맥주는 제대로 알고 즐기면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맥주 전문가인 ‘시서론’ 랍 셸먼 씨가 맥주를 즐기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며 웃고 있다. OB맥주 제공
와인전문가 소믈리에처럼 맥주만 전문으로 평가하는 직업이 있다. 바로 ‘시서론(cicerone)’이다. 시서론은 2007년 생긴 맥주 전문가 자격증으로 세계적으로 600여 명이 활동 중이다. 미국 대표 시서론으로 최근 한국을 찾은 랍 셸먼 씨(36)를 21일 만나 ‘맥주 제대로 즐기는 법’에 대해 들어봤다.
“맥주의 맛과 향을 한번 표현해 보세요. 어떻게 할 수 있죠?”
배우를 꿈꾸던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여행을 다니다 다양한 맥주 공장과 와인 숍을 찾아다니다 맥주 맛에 빠져버렸다고 했다. 그는 “와인이나 위스키 등은 맛과 향이 한정돼 있지만 맥주는 소재와 만드는 방법, 심지어 따르는 방법에 따라 맛이 바뀌는 복잡하고 복합적인 맛’을 가졌다”고 했다.
‘양폭(양주와 맥주 혼합주)’ ‘소폭(소주와 맥주 혼합주)’ 등 한국 특유의 폭탄주 문화에 대해 그는 어떻게 평가할까. 그는 “소폭은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지만 “한국의 ‘폭탄주 문화’ 때문에 다양한 맛을 즐기는 맥주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맥주 맛을 알아가기 시작한다면 라거 맥주 일색인 한국 시장에도 에일 맥주(상면 발효 맥주로 풍미가 진하고 깊음) 등 다양한 맥주가 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OB골든라거가 진행하는 맥주전문가 교육 프로그램 ‘씨서론 아카데미’에도 참여해 한국인이 맥주를 제대로 즐기게 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시서론에게 전수받는 ‘맥주 제대로 마시기’
가장 중요한 것은 맥주잔. 맥주를 먹기 전에 잔을 차가운 물로 깨끗하게 씻는 게 좋다. 맥주 온도와 잔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다. 그는 “맥주가 따뜻해지면 쓸데없는 거품이 많아진다”며 차가운 맥주를 추천했다. 여름철 시원한 맥주를 즐기기 위해 유리잔을 그대로 얼리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어떨까. 그는 “잔을 얼린다면 맥주 향과 맛을 그대로 즐기기 어려워지고 거품이 너무 많이 생긴다”며 반대했다.
맥주를 따를 때도 최고의 맛을 내는 방법이 있다. 바로 맥주잔을 45도 정도 기울인 뒤 잔 중심에 맥주를 따르고 맥주가 절반가량 차면 잔을 똑바로 세우고 한가운데에 맥주를 따르는 것이다. 맥주가 잘 섞여 향이 살고 멋진 거품이 연출된다.
이제 맛을 음미할 시간. 그는 맥주잔에 코를 상당히 가깝게 가져가더니 맥주향을 느끼라고 했다. 맥주를 따르고 나면 금방 향과 탄산이 날아간다. 그는 “향을 음미하기 위해 컵에 코끝이 담기다시피 할 정도로 대면 좋다”며 “향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은 오감을 열고 맥주 맛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첫 모금을 살짝 마셔보자. 맥주를 입에 잠깐 머금고 맛을 음미한다. 입안에서 맥주의 풍부한 향이 살아 숨쉰다. 마시다 보면 맥주 거품이 점차 사라지는데 이럴 경우 좋은 와인을 음미하듯 맥주를 살짝 흔들어 주는 게 좋다. 맥주 거품이 다시 올라와 향을 더한다. 그는 맥주 맛을 잘 느끼기 위해서 담배도 끊었다. 좋은 맥주를 즐기기 위해서는 과음하지 말고 2∼7잔 정도 마시는 게 좋다고 했다.
셸먼 씨는 한국 음식이 맥주와도 잘 맞는다고설명했다. 굴전이나 고추장 불고기는 깔끔한라거 맥주에 어울린다.
시서론의 세계에서는 ‘맥주와 안주의 조화(pairing)’도 중요한 요소다.
‘치즈버거’처럼 다소 기름진 안주에는 에일 맥주가 어울린다. 그는 “라거 맥주에 비해 알코올 함유량이 높은 에일 맥주는 치즈버거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면서 맥주와 안주를 조화시킨다”고 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도 에일 맥주와 잘 어울린다. 그는 “에일 맥주의 알코올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맛이 지나치게 강하지 않도록 조절해준다”며 “럼과 같은 도수 높은 알코올이 들어 있는 리큐어 초콜릿이 인기가 많은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설명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