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논설주간
김씨 왕조가 흔들리는 조짐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 오락프로그램이 북한 내에서 공공연하게 유행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탈북자 인터넷 신문 뉴포커스에 따르면 북한 주민 사이에선 “아랫동네 꺼(것) 있냐”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아랫동네 꺼’는 한류 콘텐츠를 지칭하는 은어다. 한국의 유명 관광지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해피선데이-1박2일’도 북한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에는 ‘아랫동네 꺼’를 갖고 있거나 시청하면 총살한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지금은 간부집 자녀들이 더 많이 본다. 이들을 다 총살했다간 체제 유지가 안 될 판이다. 탈북자들은 “단속하는 안전부 보위부 놈들이 먼저 본다”고 말했다.
북한은 전력 사정이 나빠 영화 한 편을 보는 동안에도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한다. 장사 수완이 좋은 화교 상인들은 배터리를 부착한 DVD 플레이어를 개발해 북한으로 들여오고 있다. 가격은 한국 돈으로 2만 원 정도. 북한의 컴퓨터 보급 대수는 400만 대이고 휴대전화는 150만 대로 추산되고 있다. DVD보다 작아 숨기기도 편하고 많은 분량을 담을 수 있는 USB도 활발하게 유통된다.
물론 북한 주민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에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한 재스민 혁명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방도시에서도 ‘아랫동네 꺼’를 다 돌려 보는 판이니 내부적으로는 멍들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결국 외부용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흔들리는 권력층과 주민을 결속시키기 위한 내부용이기도 하다.
2012년 북한 개정헌법에는 ‘핵보유국’이라고 못을 박았다. 김정은과 북한의 지도층은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핵을 보유해야만 김씨 왕조가 생존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북한 핵탄두의 소형화 경량화(輕量化)가 완벽한 수준은 아니고, 대기권 재진입 장치를 갖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신경 쓸 일이다. 김희상 한국안보문제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중장)은 “재래식 폭약과 방사능 물질을 뒤섞은 더티 봄(dirty bomb)만으로도 한국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이 5억∼6억 달러를 요구했다고 털어놓았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연결 지어 보면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얻어먹는 데 이골이 난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거부한 이명박 정부에 보복을 했다는 해석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젠 핵을 가졌으니 5억∼6억 달러로는 성이 차지 않을지도 모른다.
치안이 불안한 남미의 바나나 국가에는 자릿세를 내지 않는 업소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마피아들이 있다. 마피아들은 자릿세로 뜯은 돈을 조직원들에게 배분해 충성을 확보한다. 북한이 외제사치품으로 핵심 집단의 충성을 매수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은 세계가 인정하는 불량국가(rogue state)다. 마피아 국가가 핵까지 보유했으니 정말 ‘언터처블(untouchable)’이 돼버렸다. 천안함 식으로 얻어맞지 않으려면 스물아홉 살짜리 독재자에게 계속 갖다 바쳐야 할 것인가.
북핵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핵무장을 할 수도 없고, 북핵 시설에 정밀 타격을 하기도 어렵다. 유엔을 통한 국제적 제재도 잘 통하지 않는다. 북한 핵을 포획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북한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와 억제를 병행하면서 김정은 집단을 주민과 분리시키고 정권의 기반을 흔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북한 정권은 은하 3호를 쏘아 올리고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떠들고 있지만 정권 자체로 보면 분명히 실패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