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란듯 살아야죠… 험한 타국땅살이 설자리 찾았어요계속 응원해줘요… 사랑해요 코리아
필리핀 이주여성 출신 보험설계사 1호로 통하는 실린비 씨(왼쪽)는 전남 나주시 일대 필리핀 이주여성들 사이에서 ‘왕언니’로 통한다. 18일 나주시의 한 가정집에 모인 실린비 씨의 지인들이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다. 나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함께 소를 키우던 시숙이 돌아가시자 남편은 건설현장에 나갔다. 몸이 약한 남편은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그럴수록 여자는 돈벌이에 매달렸다. 아이들에게 과외로 영어를 가르치고 보육교사 자격증을 따 유치원에도 다녔다. 화장품을 들고 다니며 방문판매도 해봤다. 돈을 떼먹는 이들이 많았다. 늘어난 건 빚뿐이었다.
여자는 이제 불혹의 나이가 됐다. 문평면을 찾아 신혼 초 남편과 함께 소를 키우던 시절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소박했지만 꿈이 있었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홍어의 거리’로 유명한 나주시 영산포 인근 집에서 이곳을 찾는다. 제2의 고향이란 이런 걸까.
좌충우돌 설계사 생활 19개월
18일 전남 나주시 성북동 삼성생명 나주지점 사무실에서 실린비 씨가 고객 관리를 위해 전화를 걸고 있다. 나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전남 나주시 삼성생명 나주지점 사무실. 오늘도 유정혜 코칭 매니저(CM)가 그를 부른다. 살짝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상사에게 다가갔다.
“이게 뭐야∼ 발음 나는 대로 적지 말고 차라리 영어로 이름을 적어오라니까∼ 에러가 났잖아∼.”
다행히 아넬린은 이곳 나주에 산다. 고객의 직업과 이름을 틀려 강진군과 무안군까지 밤늦게 다녀온 날이 떠오른다.
작은 체구에 짙은 쌍꺼풀과 두터운 입술, 검붉은 피부…. 추위를 많이 타는지 옷을 껴입고 목도리를 얼굴에 감고 다닌다. 사무실에서 유독 눈에 띈다.
이방인으로 한국살이 14년
필리핀이 고향인 조실린 비 부라하우 씨(39·여)는 이름이 조실린, 어머니 성이 ‘비’, 아버지 성이 ‘부라하우’다. 동료들은 성을 ‘조’라고 여겨 ‘실린비’라고 줄여 부른다. 그는 2011년 8월 보험설계사가 됐다. 필리핀 이주여성 보험설계사 1호다.
“엄마 싫어, 필리핀 사람이니까 싫어.”
4년 전 큰딸이 이렇게 소리치며 울던 기억이 아직도 가슴 속에는 응어리져 있다. 은지의 까만 피부를 두고 친구들이 ‘아프리칸’이라고 놀린 탓이었다.
“필리핀 엄마 덕분에 영어는 잘 하잖아. 친구는 영어 잘해? 그러니까 피부가 조금 까매도 괜찮아.” 실린비 씨는 은지를 다독였다. 그날도 그는 문평면을 찾았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놀림 받는 일은 줄었지만 큰딸은 어느 순간부터 엄마와 대화할 때 영어를 쓰지 않았다. 영어를 쓰는 필리핀 엄마를 부정하고 싶었던 걸까.
이날 이후 자녀들이 컸을 때 당당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그의 목표가 됐다. 보험설계사에 도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들이 필리핀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겨줬으면….
그는 장남인 승우(12)와 세 딸인 은지(11), 은영(10), 은서(4) 등 네 아이를 두고 있다. 3년 동안 세 아이가 태어나면서 몇 년간은 정신이 없었다. 장남인 승우가 유치원을 다니고 실린비 씨가 한국 국적을 받은 2008년, 1년 동안 방송통신대에 보육교사 과정을 등록해 자격증을 땄다.
영어 과외에 이어 유치원에서 일하는 동안 늘 네 자녀가 마음에 걸렸다. 아이들이 아파도 출근했다. 결국 출퇴근이 자유로운 화장품 영업에 나섰다. 외국인이라 우습게 보는지 돈을 떼먹는 이들이 많았고 빚만 늘어났다.
“이주여성들이 비싼 화장품이나 미용기기를 얼마나 사겠어요. 손해 봤지만 영업은 많이 배웠어요.” 일을 그만뒀을 때 삼성생명 나주지점의 이영희 팀장으로부터 “보험설계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는 권유를 받았다.
보험설계사 5전(顚)6기(起)
어려운 보험용어를 영어로 번역해 꼼꼼히 정리해 놓은 실린비 씨의 노트. 나주=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2011년 설계사가 되기로 하고 매일 10시간씩 공부했지만 자격증 시험에서 계속 떨어졌다. 언어의 벽이 높았다. ‘한국 사람도 쩔쩔매는 일을 어떻게 하느냐’던 남편의 반대가 심해졌다. 결국 6번째 시험에 결국 합격했다. 2011년 8월 10일, 합격과 함께 삼성생명에 취직했다.
실린비 씨는 입사 이래 70여 건의 가입실적을 올렸다. 나쁘지 않은 실적이지만 보험은 여전히 어렵다. 고객에게 가입을 시킬 때는 혹시나 잘못된 게 없는지 불안하다.
이주여성들에게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다. 보험 약관을 영어로 만들어보려고 번역전문가를 찾았다가 1장당 40만 원이라는 말에 발길을 돌렸다. 대신 필리핀의 보험 자료와 페이스북에 매달렸다. 자주 쓰는 용어는 메모해둔다. 뇌중풍(뇌졸중)은 ‘stroke’로, 폐(lung) 간(liver) 등으로.
오후 9시. 사무실에 돌아온 이영희 팀장에게 실린비 씨가 눈에 들어왔다. 한국어 교재와 보험 강의록을 펴놓고 공부 중이다.
“실린비, 애들 밥 줘야지”
“집에 들렀다 왔어요. 찾아 볼 게 남았어요.”
실린비 씨에게 필리핀 이주여성들은 든든한 후원자이자 고객이다. 첫 실적도 필리핀 이주여성에게 올렸다. 그는 늘 “보험가입이 중요한 게 아니라 네 이름으로 된 보험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는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는 절대 보험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 얘기로 공감대를 찾는다. 한국살이를 놓고 수다를 떨다보면 다들 마음을 연다.
“언니 보험 가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
실린비 씨의 표정이 밝아졌다.
“필리핀 이주여성에겐 내가 보험”
“한 친구는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형제들이 돈을 다 가져가서 한 푼 받지 못했어요. 유산을 나눌 때 배우자 사인이 필요한데, 남편 형제들이 사인을 해달라니까 잘 몰라서 그냥 사인한 거죠. 그래서 재산을 다 뺏긴 거죠”
한국 국적이 없으면 보험 가입도 까다롭다. 하지만 경제력이 없는 남편들은 부인이 독립할까 봐 부인의 국적 취득을 꺼린다. 이 때문에 명의가 남편이나 남편의 친척으로 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을 도와주는 게 실린비 씨의 역할이다.
주변 이주여성들이 “언니 덕분에 사고에 대비할 수 있었다”고 얘기하면 피로가 가신다.
지난해 아는 동생이 “언니, 저축성 보험 하나 만들어줘요. 월 70만 원 상품 있어?”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꽤 큰 금액이다. 반가운 마음에 그날 바로 사무실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두 달 뒤 그 동생의 남편에게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가 차가웠다.
“처음엔 대출인 줄 알았나봐요. 설명을 했더니 남편의 목소리가 밝아졌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그날 이후 남편이 그 동생에게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아직 한국인을 상대로 영업하기엔 어려움이 많다. “많은 설계사들이 금방 그만두니까 부정적으로 보는 듯해요. 저도 힘들어서 그만둘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보험설계사와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까봐 그만두지 못해요.”
삼성생명 나주지점에서 만난 실린비 씨는 서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말했다. 그는 이날도 사무실을 찾은 이주여성 영어강사에게 연금상품 가입을 권했다. “목돈을 목표로 삼으면 이 상품이 좋아. 중도 해지는 하지 말고.”
그는 설계사를 시작하면서 남편과 자녀 앞으로 보험을 들었다. 실린비 씨는 “우리 가족과 필리핀 이주여성들에게 제가 또 하나의 ‘보험’이 아닐까요”라고 말했다.
“아코시 조실린 비 부라하우. 카사로구얀 피낸셜 콘설땅.”(저는 조실린 비 부라하우입니다. 보험설계사입니다.)
나주=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