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 한 어린이가 서울 양천구 도로에서 인도에서 떨어져 정차한 학원차량에 타기 위해 차량 사이를 뛰어가고 있다. 인솔자는 보이지 않았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일곱 살 어린이의 평균 키는 약 123㎝다. 9인승 승합차 옆문 디딤대에서 지면까지는 50~60㎝ 정도다. 승합차에서 내릴 땐 제 키의 거의 절반 높이에서 몸을 던지다시피 해야 한다. 무사히 땅에 닿기에도 바쁜 철부지들은 문틈에 옷이 끼었는지, 문 밖에 차가 지나가는지 살필 여력이 없다. 문틈에 끼기 쉬운 태권도복에 띠까지 맨 어린이가 하차하는데 뒤도 안 돌아보고 가속 페달을 밟는 건 살인과 다를 바 없다.
마산동부경찰서 조사 결과 장 씨는 출발하면서 왼쪽 사이드미러만 봤고 강 군이 차에 끌려가는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옆에 다른 차가 오는지만 신경 쓰고 정작 원생이 제대로 내렸는지는 안 본 것이다. 사고 차량은 '어린이보호차량'으로 등록되지 않아 운전사 외 인솔교사를 둘 의무도 없었다. 그 대신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안전한 승하차를 확인해야 하지만 이런 기본도 지키지 않았다. 사고 당시 차에는 초등학교 5학년과 3학년 각 1명, 1학년 3명 등 어린이들만 타고 있었다.
경찰은 장 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구속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사고 승합차가 어린이 수송용 종합보험에 들어 있고 과속, 신호위반 등 위법행위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달 경남 통영시에서 일곱 살 어린이가, 지난해 11월에는 청주의 여학생(8)이 학원 승합차에 옷이 끼이면서 차 뒷바퀴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연이어 있었지만 운전자는 같은 이유로 구속되지 않았다.
준기가 탔던 승합차 옆면에는 '우리 아이들 이제 믿고 맡겨 주세요'란 광고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튼튼히 자라게 해 달라며 믿고 맡긴 손자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장 씨는 차 뒤편에 '어린이가 내립니다. 정지해 주세요'란 글귀를 적어놓고도 정작 본인은 어린 제자를 돌보지 않았다.
창원삼성병원 장례식장 8호실에 마련된 빈소에는 청색 티셔츠를 입고 해맑게 웃는 준기의 영정이 놓여 있다. 쌍둥이 누나와 사이좋게 지내고 인사도 잘하는 명랑한 아이였던 준기는 옷이 끼인 채 질질 끌려가는 그 시간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무리 소리쳐도 차 안에선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생명이 홀로 공포에 비명을 질러도 지켜주지 않는 나라, 대한민국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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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영상 = 576. 학원차 운전자는 어린이가 내릴 때 반드시 차에서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