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27일 수요일 맑음. 냉면은 랩보다 세다. 트랙 #47 John Lennon&Plastic Ono Band‘Cold Turkey’ (1969년)
지난 주말, 별 생각 없이 e메일함을 열어봤다가 깜짝 놀랐다. 졌다. 냉면한테. E도 알아야 한다. 이런 굴욕. 지난해 여름, 미국의 유명 래퍼 E의 내한공연 뒤 노트에 랩 몇 자 끼적였을 때보다도 많은 독자 e메일이 답지한 것이다.
주인공은 냉면이고 얘기는 이렇다. 지난 주말, 난 한 종합편성채널에서 방영 중인 인기 교양프로그램의 취재 뒷이야기를 기사로 다뤘다. 제작팀의 G PD는 원래 냉면을 안 좋아했는데 대부분의 냉면 육수 맛을 조미료만으로 낸다는 사실을 파헤치다 진정한 육수가 담긴 냉면을 들이켜게 됐고 비로소 입맛이 트였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본 냉면 마니아들이 내 메일함으로 ‘제작진도 반한 그 냉면집이 어디냐’는 문의를 쏟아낸 거다. 냉면은 제작팀의 G PD가 드셨고 난 그 얘기를 전한 것뿐인데 ‘임 기자가 먹은 그 냉면집을 당장 알려 달라’는 독자도 있었다.
냉면 육수나 조미료 음료를 마시던 여름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이 간다. 계절의 시소는 다시 여름 쪽으로 기울고 시간은 초록을 향해 전력질주할 것이다. 올여름엔 진정성 있는 냉면을 더 많은 곳에서 팔았으면 좋겠다. 조미료가 아니라 고기 국물을 제대로 우려낸 그 육수를, 나도 스님께 맛보여드리고 싶다.
비틀스 해체 뒤 존 레넌(사진)은 1969년 ‘콜드 터키’란 곡을 발표했다. ‘식은 칠면조’라…. 콜드 터키는, 갑작스럽게 약물을 끊게 해 신체적 불쾌감을 줘서 마약에서 영영 손을 떼게 하는 갱생 치료법을 말한다.
‘기온은 오르고/열은 높아져/미래가 보이지 않아./하늘도 보이지 않아./발이 무겁고/손도 그렇지./아기가 됐으면 해./(차라리) 죽었으면 해.’
그래도 역시 냉면 부르는 노래는 명카드라이브(멤버 박명수, 제시카, 이트라이브)의 ‘냉면’인가. 나도 냉면이 좋다. 딸기도.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