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지에서 작곡가만 317명… 케이팝은 ‘Made in World’
그래픽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국내외를 오가며 취재를 거듭할수록 세계 곳곳의 다양한 인물이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으며, 그들 대다수가 네트워크나 인력 풀을 통해 촘촘하고 체계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북유럽에서는 이미 지난해 말 소녀시대가 올 1월에 낸 신곡 ‘아이 갓 어 보이’의 작곡 과정을 미리 엿봤고, 취재 기간 중 미국 안무가 토니 테스타가 샤이니의 2013년 신곡 ‘드림 걸’에 참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케이팝의 기본 콘텐츠가 국내에서 만들어진 경우에도 ‘100% 국산’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해외로 수출될 때는 현지 작사가나 홍보전문가, 공연기획자들에 의해 재가공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는 말 그대로 케이팝을 조립하고 있었다.
케이팝 작곡가가 유럽의 북쪽에 집중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자국 시장의 협소성 △음악적 흡수력과 잠재력 △동서양을 아우르는 감성 △A&R(아티스트 앤드 레퍼토리·서로 어울리는 아티스트와 곡을 연결해주는 업무) 시스템의 체계적 정착이 상호 작용한 결과로 분석한다.
소녀시대의 ‘아이 갓 어 보이’ ‘소원을 말해봐’를 함께 만든 노르웨이의 작곡가 그룹 디사인 뮤직 멤버들은 “북유럽 작곡가들은 유럽의 전자음악에서 편곡적인 센스를, 흑인음악에 기반한 미국식 팝 음악에서 대중적 리듬을, 스칸디나비아 팝 음악에서 유려한 멜로디를 차용해 세계적으로 먹힐 만한 음악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한국과도 음악적 감수성에서 통하는 부분이 있다”면서 “아바와 아하의 예에서 보듯 내수시장의 한계 탓에 해외에 진출하려는 경향이 크다”고 말했다.
반면 일본은 역사적, 감성적으로 한국과 많은 부분을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케이팝 작곡가가 적었다. 자국 음반 시장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달해 곡을 공급할 곳이 많은 데다 한국 작곡가와 표현력이나 창의력에서 겹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케이팝 곡의 일본어 번안은 여전히 각광 받고 있다.
남미와 아프리카는 아직 조립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소속 가수의 합동 콘서트를 열었던 큐브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현지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않아 파트너십을 맺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케이팝 조립’은 필수적인 선택이며 앞으로 더욱 체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세계는 지금 케이팝 조립 중’ 시리즈는 케이팝 산업의 글로벌화 과정을 잘 짚은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면서 “미국, 유럽, 인도의 개발자가 공동 참여하는 IT 산업처럼 케이팝 역시 글로벌 네트워크 안에 들어가면서 필수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케이팝은 국제 협업에 의해 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많은 노하우를 축적하고 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라고 평가했다.